"아니 왜 그렇게 몰입해서 봐?"
드라마를 보다 계속 중얼중얼 몇 마디씩 얹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그때서야 아, 나 왜 그랬지?
드라마가 웰메이드라 너무 빠져버렸나 했다.
평소에 영화나 드라마, 예능 같은걸 잘 보지 않지만
나와 반대인 남편덕에 애들을 재우고 난 뒤
같이 앉아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는 게
요즘 육퇴의 마무리 일정이 되곤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잔인함, 폭력, 기구한 운명 등을
보고 있으면 내 숨이 다 조여 오는 것 같아서 잘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항상 숨이 조여 왔던 이유는
미디어들의 각본들이 SF소설이 아닌 이상 마치 현실을 바탕으로 재현해 낸 것 같아서이다.
어쩌면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기가 막힐지도 모른다.
뉴스를 통해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되는 세상인 듯싶기 때문이다.
자려고 누웠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나 현실이나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나의 인생은
그러한 수고가 없이도
그럭저럭 살 수는 있는 평범한 삶이라는 것을.
그 평범함이 갑자기 나에게 안도 감을 주었다.
하루의 마무리를 포근한 잠자리에서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의 과거는 더 많이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래도 갖지 못할 땐 질투하고 자책하고 절망했다.
지나온길에 후회하고 내가 떠나보낸 기회들이 나에게
바보라고 욕하는 것만 같아 괴로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은 언제나 나의 성향을 기반으로 한
선택이었음을. 그 선택들이 모여
오늘날의 이런 나를 만든 게 아닐까.
이런 내가 뭐 어때서.
나라는 사람의 그릇.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늘 더 안전하고 위험부담이 적은 쪽을 선택한 건 어쩌면 내 그릇에 아직은 다 담을 수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의 나를 너무 자책하지 말아도 되었을 것을..
아, 어쩌면 사람은 다 자기 그릇을 갖고
태어나다보다.
내 그릇의 크기만큼만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러므로 그릇을 키우지 않고는 더 담을 수 없음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열망과 비교는
이제와 정말 무의미하구나.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이
좀 명확해지는 듯했다.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 것,
나의 평범한 하루에게 감사하기,
만약 좀 더 의미 있는 그릇으로 쓰이고 싶다면
노력한 만큼 나의 그릇의 크기를 키워보리라.
준비되어있지 않았던 그때의 나를
더 이상 탓하고 싶지 않다.
준비되어있지 않으면서 무작정 바라기만 하며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