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야.

by 치케

아이를 낳기 전까진 몰랐다.

너무 순수했다고나 할까, 다른 사람과 나를 굳이 비교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15평의 작은 신혼집도 둘이 있기에 충분했으며

남편과 늦은 밤 팝콘을 나눠먹으며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충만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니 내 몸에 생긴 변화가

나를 자극했다.

예쁘게 배만나온 임산부 연예인들 사진부터가 거울 속 내 모습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28kg이 찌고 나서야 다행히 아기가 나와주어 살이 더 찌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아기는 고작 3.5킬로인데 살들은 그대로였고

아랫배에는 한 뼘 길이의 제왕절개의 수술흔적이 진하게 남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카락들은 우수수 빠져나가고 살이 접히는 부분들은 착색이 오며

신생아 육아로 인한 불규칙한 생활패턴이 얼굴에 핏기도 생기도 없애주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육아용품으로 꽉 들어찬 집은 좁아터져보였다. 숨이 막혔다.


요즘 엄마들은 왜 이렇게 날씬하지...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건 아직 남은 호르몬의 농간이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다.

첫째를 낳았을 땐 지금보다 젊기도 했고 아이도 하나라 어느 정도 운동과 식단도할 수 있었기에

1년 만에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둘째를 낳고 보니 운동이고 식단이고

첫째를 같이 돌보느라 임신단계부터가 고행의 연속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배려받던 첫 번째 임산부시절은 추억이 되었고

두 번째는 마치 공주에서 하녀로 신분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처럼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내가 둘째를 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매일 부푼 배를 안고 첫째와 울었던 것 같다.

아주 다양한 이유로 인해.

시간이 지나 어느덧 둘째도 유치원에 가게 되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듯했다.

요즘은 물건을 살 때도 인스타그램 공구를 하다 보니

우연히 들어간 인스타에서 오래전 잊고 지냈던 동창의 피드가 보였다.

풋풋한 20대 중반에 보았던 후배가 어느새 애기엄마가 되어있었다.

아 얘도 아기 낳았구나.. 하며 근황을 잠깐 보던 중

'아기 낳고 100일도 안된 채 떠난 파리여행~ 10박 11일의 행복했던 순간, 와인으로 시작하는 하루~'

라는 낯간지러운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스크롤을 하면 할수록 더욱 가관이었다.

그러나 부러웠다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라고.

부러운 게 왜 지는 거일까? 그래서 부러워하는 마음조차 패배의식이라는 생각 속에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상대의 흠을 찾아보려 했다.

나이차이가 정말 많은 의사남편을 만나 열쇠 3개를 주고 결혼했다는 후배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시부모님이 몰래 와서 산후조리원비용을 내주고 가셨다는 말에 부러웠을 때조차

나중에 자동차 한 대 분량으로 패물을 실어 날라 결혼을 했다는 말을 듣고 그럼 그렇지 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던 와중,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는 나 자신이 창피했다.

부러워하면 지는 게 아니라 부러워하면 거기서 끝나면 될 일을

결국 어쭙잖은 비교로 정신승리를 이끌어 내는 그 결말이 참으로 애석했다.


나의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하는 것,

나의 남편과 남의 남편을 비교하는 것,

나의 시댁과 남의 시댁을 비교하는 것,

나의 처지와 남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

우리의 마음의 병은 모두 비교에서부터 온다.

그런데 이 비교는 부러우면 지는 거야라는 슬로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부러울 수도 있지. 그냥 그건 부러운 거지.

그렇게 남을 향한 부러운 마음을 흘러가는 강물 위에 나뭇잎 띄우듯 그렇게 내려보내면 될 것을,

너무 애가 타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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