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남편친구의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남자들의 결혼 적령기도 많이 늦어졌는지
남편의 친구들이 유독 올 한 해 많은 결혼을 한 것 같다.
누군가의 결혼식을 보고 있을 때면
항상 예전의 나의 결혼식이 떠오른다.
신랑신부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그 떨림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나 역시 그날은 너무 정신이 없었던 날이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날의 공기, 내가 입었던 드레스,
하객들의 표정들이
여전히 기억 속에 뭉게뭉게 떠오르곤 한다.
요즘은 주례 없이 부모님들이 축사를 해주시거나
신랑신부가 함께 쓴 성혼선언문을 읽기도 하는데
어제 본 커플의 성혼선언문을 듣고 있으니
서로에 대한 사랑을 약속하고 속삭이는 문구들이
참 예뻐 보였다.
나는 결혼식 전날까지도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 쓴 글들을 읽어보고 고치고
어떤 표현에서는 깔깔대고 웃기도 하며
내일 실수 없이 잘 읽자 하고 다짐했었다.
그중 우리의 다짐 중 하나는
"서로의 부모를 나의 부모라 생각하며 잘하겠습니다."
였는데
나는 그 뒤로 다른 사람들의 성혼선언문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그 말이 나왔던 걸까?
시부모님과 인연을 끊다시피 한 지 반년이 지났다.
지난 8년간 내가 성혼선언문에서 다짐했던 그 말 때문인지
시부모님의 진짜 딸이 되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외동아들인 남편을 대신해 막내딸로 자란 내가
그분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드리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어머님, 아버님, 나 이렇게 셋이서 처음부터
너무 의욕만 앞세웠던 건 아닐까.
나에게 지극히 다정하게 해 주셨던 분들이 정말 감사했고
나 역시 받은 사랑만큼 돌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보는 가족이기 때문에
배려는 어느새 당연한 일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처음의 기대를 넘어서는
고마움은 있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그분들의 딸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딸 같은 며느리", 그리고 정작 가족으로써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할 때는
"내 아들을 뺏어간 여자"가 되어있었다.
남편은 내 속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며
설득하려 했지만
여자들끼리 알 수 있는 그 서늘한 시그널을
시아버지도 남편도, 남자들은 절대로 알 수가 없었다.
시부모님과 나의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큰 고비도 여러 번 찾아왔었고 죽음의 문턱에서
세돌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 아들이
점보다 작아지려는 나를 향해 통곡을 하며 뛰어왔다.
그 이후로 삶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전업주부인 나는 은퇴한 시어머니와 거의 매일을
붙어있어야 했고 붙어있는 시간만큼 늘 후폭풍이 따라왔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곳까지
들어와 버린 것 같았다.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서 그 누구의 조언도 도움이
될 수 없었고 내가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물을 팔팔 끓이면 언젠가는 넘치듯이
그렇게 나도 결혼 8년 차가 되어서야 넘쳐흘렀다.
다행이었다.
사지로 내몰리고 나서야 휴전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남편의 유일한 가족이기 때문에
나는 나 혼자만의 휴전모드로 들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이참에 시댁과 인연을 끊으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적어도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한.
나에겐 긴 치유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간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폐허가 된 나만의 성을 바라보며 울고 주저앉아있었지만
마음잡고 다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내 삶의 방향과 시선을 돌려보려 한다.
그리고 스스로 안정을 찾고 치유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인생 뭐 있나.
살다 보면 살아지겠지.
돌고 돌아 다시 붙을 수도 있겠지.
처음과 같진 않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나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매워지겠지.
흔적이 남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내 인생의 페이지를 넘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