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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Feb 19. 2016

NYCL#2 weather, 웬 걸

    날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의 날씨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하며, 예측 불가능하다. 마치 콧대 높은 젊은 아가씨를 보는 것 같다. 뉴욕에 살고 있다면 날씨 관련 뉴스를 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다행히도 일기예보는 잘 들어맞는 편이어서 등교 전 또는 출근 전에 반드시 아침 뉴스를 보아야 한다. 내 휴대폰에는 날씨 관련 App만 두 개가 있다. 이곳에 온 뒤부터는 날짜별로, 시간별로 일기를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불의타 같은 소나기를 만나 흠뻑 젖기도 한다.


    작년은 특히 이례적인 해였다. 이상기온으로 겨울이 지나치게 따뜻했다. 손발이 찬 딸이 혹여나 너무 춥진 않을까 걱정하시던 부모님께 무안할 정도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장하는 Bryant park 스케이트장에는 반팔을 입고 스케이팅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Bryant Park Ice Stake Rink, 2015. 12.  24.


    부모님께서 국제택배로 보내주신 오리털 패딩을 한 번도 못 입어보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사이에 snow storm이 미국 동북부를 덮쳤다. 뉴스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snow storm의 영향력과 대비책에 대해 언급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예보대로 2016. 1. 23. 에 Blizzard Jonas(눈폭풍의 이름)가 찾아왔다. 뉴스에서 지겹도록 떠들어댄 탓인지, 사람들의 축적된 경험 때문인지 Jonas가 오기 하루 전 맨해튼의 큰 슈퍼마켓에서는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학생 친구들 중에는 정전을 대비해 성냥을 사는가 하면, 단수를 대비에 욕조에 물을 받아놓는다는 친구도 있었다.


    예보만 볼 때에는 과잉 우려가 아닌가 싶었지만, 막상 1. 23. 당일이 되니 무서울 정도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후일 발표된 뉴스에 따르면 Jonas는 뉴욕 역사상 2번째로 큰 snow storm이었다고 한다.) 센트럴 파크에는 무려 26.8인치(68cm)의 눈이 쌓였고, 차들은 눈 속에 파묻혀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맨해튼 시내에는 차량 운행이 금지되었으며, 맨해튼과 뉴저지를 잇는 다리들이 폐쇄되었다.

blizzard 다음날인 1. 24. 거리의 모습. 차가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뉴욕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그다음부터였다. 눈이 60cm 이상 쌓인 후였으므로, 도로를 걸어 다니는 것이 쉬울 리 만무했다. Jonas가 온 것은 토요일이었으므로, 내심 월요일에 휴강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웬 걸, 고작 단 하루 만에,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모든 도로가 정비되었다. 인도도 마찬가지였다.(그 결과 애석하게도 월요일에 학교를 가야 했다.) 놀라운 행정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것이 선진국의 위용일까. 서울에 같은 양의 눈이 쏟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뉴욕 시민들은 엉뚱하고 재기 발랄했다. 한국에서는 재난으로 표현되었을 법한 blizzard에도 불편함을 토로하기 보다는, blizzard를 즐기고 있었다. 센트럴 파크에는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서서 썰매를 타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차량운행이 폐쇄된 틈을 타 도로 위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장비들은 다들 어서 난 건지. 눈폭풍에 대비해서 썰매 하나쯤은 집에 구비하고 있어야 진정한 뉴요커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들에게는 blizzard가 재난이 아닌 축제처럼 보였다.

New York Times, 2016. 2. 12.자 기사에서 발췌


    어제는 눈이 왔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Washington Square Park를 지나 집에 도착하자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한편 오늘은 폭우가 쏟아졌다. 엄청난 바람에 내 우산은 세 번이나 뒤집어졌고, 비가 가로로 내리는(?) 바람에 결국 오늘도 흠뻑 젖은 채로 들어왔다. 자유가 기치인 도시에 걸맞게, 날씨마저 충분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유를 지나쳐 완전히 제 마음대로랄까.


    뉴요커들은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이렇게 심한 폭우에도 우산조차 쓰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우산이 혹여 뒤집힐까 우산대를 꼭 부여잡고, 조금이라도 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와 비교하게 된다. 그들은 날씨를 즐기고 있고, 나는 여전히 날씨와 싸우고 있다. 고작 7개월짜리 뉴요커라지만,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나는 그들과 같아질 순 없을 것 같다. 지나친 자유가 방종으로만 느껴지는 나는, 내일만큼은 젖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조용히 우산을 가방 속에 넣는다. 제발 비가 올 때는 바람이 약하게 불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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