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아웃풋에 대해 논할 때가 되었다.
아마 영유에 보내려는, 혹은 보내고 있는 부모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바로 '아웃풋'일 것이다. 영유는 아이에게 어떤 아웃풋을 낼까? 아웃풋은 얼마나 나와야 할까?
간혹 블로그나 맘카페에서는 아이가 영유에 다닌 후 전국 스피치 대회에 입상했다거나, 영어로 일기를 쓴다거나, 미국 초등학생 수준의 책을 읽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감탄과 동시에 부러움이 뒤섞여 나온다. 우리 아이도 영유를 보내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 기대감이 샘솟는다.
단언하건대, 영유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저만큼의 아웃풋을 내는 것은 아니다. 만일 저 정도 수준의 아웃풋을 기대하고 영유를 보낸다면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아이들마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나 언어 수용능력은 일률적이지 않고 천차만별이므로, 영유의 아웃풋은 아이마다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영유를 3년 다녔는데 영어를 잘 못한다, 영유는 효과가 없다'라고 말할 것이고, 다른 엄마들은 '영유를 1년밖에 안 보냈는데도 엄청난 아웃풋이 나온다, 가능하면 무조건 영유를 보내라'라고 말할 것이다. 둘 다 틀린 말로 볼 수 없다.
똑같은 일타강사의 강의를 들는다고 해도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학생이 있고, 50점을 맞는 학생이 있다.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가르침을 받아도 각기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영유도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사실 언어감각이 월등히 뛰어난 아이들은 영유가 아니어도 엄마표 영어, 학습지 등 어떠한 방법으로든 영어학습에 따른 아웃풋을 낸다. 한 직장동료의 5세 아이는 영유에 전혀 다니지 않았음에도 영어 동화책을 술술 읽고,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말했다. 슬며시 비법을 물어보니 별 특별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는 그저 아이에게 영어 영상을 많이 보여주고, 동화책을 읽어주었다고 했다. 겨우 그만큼의 노력으로 그 아이만큼의 아웃풋이 나온다면, 아무도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영유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위 이야기나 각종 블로그에 등장하는 신기하고 대단한 아이들은, 사실은 언어감각이 월등히 뛰어난 아이들이다. 이들은 비단 영유가 아니더라도 인풋을 뛰어넘는 아웃풋을 보여준다. 내 아이가 이들 수준의 언어감각, 언어능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동일한 아웃풋을 강요한다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부모는 아이에게 실망하는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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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나 예술에 있어 재능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예체능에서는 '노력이 재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기 때문에, 부모 역시 자녀가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면 대체로 빨리 포기하는 길을 선택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작은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적이 있었는데, 예중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피아노 선생님의 말에 엄마는 "우리 애는 피아노에 그만큼의 재능이 없어요"라며 단칼에 제의를 거절했다.(심지어 그 당시에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나도 내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공부 역시 예체능과 다를 바 없는 재능의 영역이다.(지극히 개인적 견해임을 밝혀둔다.)
비단 수학이나 과학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이론을 정립하고 난제를 해결하는 천재들의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 암기, 문해력, 이해력 등과 연결되는 평범한 문과적 분야도 결국은 재능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 다만 사람들이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과적 영역이 재능에 따른 결과가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다소 추상적이며(예를 들어, 문해력을 무엇으로 측정할 것인가? 수능 언어영역 문제를 잘 푼다고 해서 그가 꼭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아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것인가? 아니면 뛰어난 감수성으로 내용에 잘 공감하는 것인가? 수십 번 다독하고 책 내용을 암기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조차 쉽지 않다.)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일 뿐이다. 즉, 마치 '노력으로 재능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한 유튜브에서 서울대 졸업생 6명에게 공부가 재능의 영역인지 노력의 영역인지 묻자, 4명이 재능이라고 대답하였다.(내 글에 대한 메신저로서의 신뢰를 위해 첨언하자면, 이 대학은 나와도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언어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언어를 쉽게 배운다. 예를 들어 나는, 언어재능이 꽤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체류 경험 없이 한국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했지만, 미국에서 단 2개월 간의 공부로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어린 시절 영유에 다녔다면, 영어를 더 잘하지 않았을까?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영유 같은 것이 없었다. 설령 있다 해도, 부모님께서 영유 비용을 감당해 가며 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어린 나이부터 영유를 다니며 자연스레 영어를 접하고 있는 내 아이가 부럽다.
아직 내 자녀에게 언어적 재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 나를 닮았다면 영유를 통해 기대 이상의 아웃풋을 낼 수도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AR 몇 점대 책을 읽으리라거나 단어를 줄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영유를 통해 얻고 싶은 아웃풋은 내신이나 수능의 '영어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아웃풋은, 영어를 생활습관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느끼고 어려워하지 않는 것, 자연스럽게 영어로 발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영유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이 정도의 아웃풋도 얻기 쉽지 않다. 언어는 절대적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물론 나는 언어 쪽 전문가가 아니므로, 역시 사견이다.) 영유에서 몇 시간 동안 영어를 접한다고 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영어가 될 리 만무하며 이를 아이에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 원하는 아웃풋을 얻으려면 집에서도 외국어를 최대한 많이 듣고 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도 피곤하고 게으른 워킹맘은, 아이에게 영어책 한 권 읽어주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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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유에서는 입학 설명회를 개최한다. 그때 아이들의 영어 발표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며, '우리 영유에 다니면 이렇게 영어를 잘하게 된다'는 광고를 한다. 또는 1년에 한 번씩 발표회나 학예회 같은 것을 개최하여 아이들에게 그간 영유를 다니며 배운 영어 실력을 뽐내게 한다.
영유에서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성취'를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학예회에 같이 참석했던 다른 학부모들은 자녀가 영어로 무언가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하고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내 아이가 발표할 때 나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계속하여 발표를 지켜보면서 내가 받은 느낌은 '이질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입학 설명회에서도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는 영유에 입학시키는데 급급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나중에야 이 이질감이 '부자연스러움'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느낀 부자연스러움은 상황 때문에 유발되었을 수도 있다.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긴장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도 웅변대회에 나갈 때 꾸며낸 어투로 말하듯,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평소의 어투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들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아이들의 영어 발표는 너무도 경직되고 딱딱했다. 이는 '외운 것을 잘 현출'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외국어를 암기해서 대중 앞에서 발표한다는 사실 자체는 참으로 대단하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 평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나는 독일어를 전혀 못하지만, 짧은 발표를 위해 모든 독일어 스크립트의 음절을 한국말로 바꾸어 써 넣은 뒤에 외워서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독일어로 된 발표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독일어를 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영어 발표가 아웃풋을 뽐내는 제 기능을 하려면, 미리 정해놓은 대본 없이, 선생님의 여러 가지 자유로운 질문에 아이들이 즉석에서 대답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봤던 대부분의 영유에서는 그런 형식으로 발표를 하지 않아 대강의 아웃풋을 가늠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영유를 옮기려고 결심한 뒤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종 맘카페 등을 통해 간접정보를 얻는 것 뿐이었다. 설상가상 내가 사는 작은 동네의 영유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편이어서, 직접 상담을 가고 체험수업을 받아보는 등으로 부딪쳐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영유에 대한 일련의 글들을 적는 이유도, 내가 익명의 맘카페 글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내 사유와 고민들이 조금이나마 다른 부모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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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풋에 대해 얘기하면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영어가 스트레스나 엄마의 강요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유에 대한 비판의 본질은 '얼마나 어린 나이에 영어를 접하는지', '한글도 못하는데 영어를 시키는 것은 아이에게 혼란을 주지 않을지'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핵심은 '영유와 같은 방식으로 영어를 시키는 것이 맞는가'라는 방법의 문제이며, 이는 결국 '어린 나이에 영어 학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타당한가', '어린 나이에 학습적 아웃풋을 강요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비판으로 보아야 한다.
영유에 쏟아부은 비용과 시간, 즉 매몰비용이 생각나 쉽지 않겠지만, 영유의 아웃풋에 대해서는 지나친 기대나 환상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나 역시 아이가 영어를 쓰는 것이 싫고 영유에 다니기 싫다고 한다면, 미련 없이 그만두게 할 생각이다. 상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딱 그 정도 선에서만, 영유가 아이에게 영어를 접하게 하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