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생활 초반 월스트리트 근처에 살았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한 뼘 정도로 작게 보이는 고층빌딩 숲은 나에게 뉴욕 그 자체로 다가왔다. 관광객이 집착하는 황소상 아래에 달린 고환은 색이 바랠 정도로 손을 타고, 911 테러를 기억하는 곳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올려져 있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뉴욕 필름스쿨’의 깃발과 그 뒤로 굽어지는 멋스러운 길가를 넘어가면 우리가 ‘월가’라고 부르는 그곳이 있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뉴욕 증시 지수와 세계 경제 소식,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부터 아시아 미디어까지 즐겨 삼는 소재들 그러니까 돈, 숫자, 바쁜 사람들의 전화받는 풍경, 화폐가 우스운 사람들의 은밀한 사생활 이야기, 사기꾼들, 졸부들의 이미지는 월스트리트 그 자체다. 마천루의 풍경은 또 어떠한가. 말 그대로 ‘CITY'의 전형이다. 야경의 불빛이 야근하는 이들의 스트레스 일 지라도, 그 풍경은 여행자의 가슴속에 ’첫사랑이 보낸 엽서‘처럼 간직된다.
나는 ‘부’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재산을 탕진하는 모험활극식의 투자 혹은 카지노 활보를 할 정도로 부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매주 메가밀리언과 파워볼 로또를 사는 귀여운 행운 주의자 정도랄까. 뉴욕에 당도한 뒤 어쩔 수 없이 ‘부’에 대한 이미지는 확장되고 또 세분화되었다. 가스레인지 뒤에서 가끔 쥐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어느 낡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알고 보니 수억 대 연봉자였다든지, 맨해튼 5번가의 신상 명품 소식을 전하며 럭셔리한 일상을 공유하는 어느 SNS 인플루언서가 사실은 월세에 허덕이며 구입-환불-구입-환불을 반복하는 불안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부터 말이다.
‘과장된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에 완벽히 부합하는 뉴욕. 자본주의를 드러냄에 망설임이 없는 뉴욕은 중국 상하이를 닮았다. 하지만 ‘그래서 1등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또 뉴욕이다. 그것조차 G1과 G2를 다투듯 묘하게 닮았다. 돈이 오가는 냄새를 온몸으로 풍기는 상하이와 월스트리트엔 황소상 마저 똑같이 놓여있지 않은가.
“오늘 저녁 다운타운 쪽에 한 잔 하러 올래요?”
어느 날 나의 SNS로 온 메시지였다. 찾아보니 테이블 값이 제법 나가는 클럽 파티 초대였다.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 그러니까 ‘어제 정말 재밌었어’ 등의 댓글을 단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니 월스트리트에서 월세 오천 불은 충분히 넘을 법 한 맨해튼 아파트에서 사는, 슈퍼카와 헬기를 타는, 옥션에서 수백억짜리 그림이나 도자기를 보러 다니는 화려한 싱글들이었다. 도무지 나를 왜 무슨 이유로 그곳에 초대해 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해시태그 때문이겠지) 그냥 맨해튼 근처에 있을법한 수백 명의 여자들에게 보내는 ‘단체 메시지’ 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종의 ‘기회’를 잡기 위해 그런 곳에 쫒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네트워크 중심인 뉴욕 사회에서 ‘인맥’이라는 것은 ‘생존’ 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든 체류비자를 마련하고 신분조정에 성공해 영주권을 손에 넣어야만 유지되는 외국인들에게 뉴욕에서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처절해 보인다. 학생 비자를 위해 억지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든지, 원하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월세를 감당하고 ‘워킹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에서보다 곱절로 더 열심히 사는 이방인들 말이다.
그러다가 집주인의 변덕에 하루아침에 쫓겨나기도 하고, 높은 집값과 생계비에 맨해튼과는 점점 멀어져 지하철을 한 시간씩 갈아타야 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도, 여전히 ‘뉴요커’ 딱지를 버리지 못해 눌러앉아 있는 이방인들. 어느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환상을 자신의 인생으로 만들기 위해 들어온 싱글 남녀들. 그들에게 저런 뉴욕 부자들의 프라이빗 파티는 일종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월세와 유지비를 쏟아 부으며 ‘뉴욕 정착’의 꿈을 어렵게 이어가는 한국인들 대부분은 나를 두고 “시민권자랑 결혼하니 얼마나 편하겠어”라는 소리를 했다. 정작 나는 뉴욕에 관심조차 없었으며, 미국 생활을 꿈꿔본 적도 없는 ‘뜨내기’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럼에도 ‘꿈을 꾼다’는 말로 누군가는 월스트리트를 그린다. 월가에서 일하는 남자와의 결혼이 목표라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여성도 만나보았다. 뉴욕에서 한 달 살기 혹은 일 년 살기가 유행이 되면서 여전히 뉴욕은 또 한 번 ‘살고 싶은’ 도시로 불리고 있다. 뮤지컬 ‘렌트’의 노랫말처럼 참 낭만적인 맨해튼에서의 꿈은 이방인들 머리 위에 물풍선처럼 붕 떠있다. 좁은 집에서 월세를 나눠 살며 작은 마켓에서 사과 몇 알, 적은 식재료를 사 가지고 플라스틱 그릇에 나눠먹어도 노래가 절로 나오는 그런 청춘들은 오늘도 노숙자가 앉아있는 지하철역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월스트리트를 걷는다.
야경 속의 빌딩이 내 것은 아니지만, 야경을 보는 순간만큼은 온 도시를 손안에 가진 듯 착각이 드는 것처럼. 비록 월스트리트의 빛나는 것들이 우리의 것은 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우리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 곳에 섞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