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코로나를 물리친 영웅처럼 미국이 웃고 있다.
축제는 다시 시작됐다.
지금 미국은 완전히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돌아간 듯 하다. 비행기엔 자리가 없고, 라스베가스와 플로리다 하와이 마이애미 등지는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축제를 열면 사람들이 모인다. 이제 마스크 쓴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손 소독제는 이제 아무도 사지 않아 한 병에 몇백원도 안한다.
백신 덕분이다. 마치 어느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미국은 세상의 악으로부터 완전히 구해진 것 처럼 굴고 있다. 코로나 기간동안 트럼프는 핵가방을 들고 '마이웨이'를 떠났고, 바이든은 마스크를 쓴 채 조용한 축배를 들었다.
뉴욕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가장 불명예를 얻은 도시다. 그러나 단 1년 여 만에, 가장 먼저 회복 분위기로 들어섰다. 간간히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 소식이 들려오긴 하지만 실제 길거리의 분위기는 관광객만 조금 적은, 이전의 활기찬 뉴욕 그대로다. 맨해튼 지하철 출구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은 하나 둘 마스크를 벗고 있고, 식당은 예약 없이 못 갈 지경이다. 길에는 다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과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아직, 코로나 종식이 아닌데도 말이다.
얼마 전 ‘럭셔리 크루즈 여행'의 티켓이 3시간도 안 되어 완판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가장 평범한 방의 가격은 73,499달러, 우리돈으로 8천 4백만원이 넘는다. 만일 ‘럭셔리 스위트룸’에 묵는다면 199,000달러, 무려 2억 2천8백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고가 여행 상품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느라 지친 미국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전혀 문제 되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인생’을 꿈꾸는 것은 비단 있는자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 놓으면서, 코로나 기간동안 일을 하든 안 하든 고소득 기준을 넘기지 않는다면 1인당 130만원 정도 되는 금액을 몇 번이나 받을 수 있었다. 식구가 많을수록 당연히 그 가정이 가져가는 금액은 많아진다. 게다가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라면 매주 나오는 실업 수당, 식료품 구입이 가능한 푸드 스탬프, 아동 지원금, 의료혜택, 집세 할인 등을 받을 수 있다. 누군가에겐 말 그대로 ‘놀고 먹는’ 코로나 기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한 프렌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가 말했다.
“어제 보조금 들어온 날이었어? 어쩐지. 다들 미친듯이 와서 음식을 몇 세트씩 사가더라고!”
어차피 돈은 또 들어올 것이니, 일단 먹고보자는 걸까. 보조금이 들어온 다음날에,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수영장에는 깨진 술병이나 폭죽이 널부러져 있었다. 누군가는 4인 식구대로 보조금을 받아 코로나 기간동안 하와이, 라스베가스, 멕시코 칸쿤을 다녀왔다고 했다.
미국에는 자신의 소득을 현금으로 챙기고 공식적으로는 수익을 적게 보고해 몇십억짜리 집에 살면서도 '저소득층'인 이민자들이 많다. 이런 이들은 돈에 돈을 얹는 느낌으로 코로나 기간을 '놀면서' 보냈을지 모른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없어 천국이라며 골프장에 매일 출근하고, '정부가 주는 꽁돈'이 생긴 김에 명품쇼핑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거드름은 한인타운 빵집이나 카페에서도 자주 들려왔다.
나 역시 지난 가을 ‘참지 못하고’ 라스베가스 여행을 다녀왔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로 무장을 하고 최대한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호텔과 길에는 이미 술과 분위기에 취한 이들로 가득했다. 호텔 입구에 무료 장갑과 마스크가 배치되어 있지만 아무도 뽑아 쓰는 사람은 없었다. 판데믹으로 문을 굳게 닫았다가 오랜만에 개장 한 라스베가스는, 할인 쿠폰을 날려대며 다시 ‘황금기’를 되찾으려 노력 중이었다.
미국의 코로나 시대는, 아이러니 하게도 일자리를 많아지게 했다. 판데믹 이후 굳게 닫혔던 비즈니스가 열리면서 여기저기 ‘Hiring’ 문구가 붙기 시작했다. 특히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의 경우가 그랬다. 푼돈 시급을 받으면서 굳이 일을 하는 것 보다, 보조금과 실업수당을 받는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에 청년들은 놀기를 택했다. 요즘은 가게에서 일할 점원들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는 호소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대신 물가가 올랐다. 식당의 모든 메뉴 가격이 올랐다. 기름값, 고기값, 식료품 전체 가격이 다 비싸졌다. 식당의 팁 역시 18% 이상 부터 시작한다고 영수증에 박아놨다.
매일 수십개의 이메일이 날라온다. 다시 영업 재개를 했다는 레스토랑, 술집, 파티를 연다는 바, 대면 수업을 시작한다는 학교, 직원을 구한다는 가게들, 비행기 티켓 할인 쿠폰, 공연을 보러 오라는 소식이 가득하다.
얼마 전 이웃의 ‘젠더리빌’ 파티에 초대받았다. 마스크를 쓰고 간 나는 스무명 남짓한 사람들의 당황하는 눈빛을 보았다. 바로 벗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침 그 날은 독립기념일이라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폭죽놀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코로나 종식 파티같았다. 분위기에 젖어 한바탕 놀고 들어온 나는, 집에 와서 공연히 항균 바디워시로 샤워를 하고 입었던 옷에 알콜 스프레이를 뿌려대며 ‘아 이제는 이런 불운의 느낌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바이러스를 의식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평생 걱정을 하며 사는 것은 '선비의 나라'에서 온, 작지만 매일 박터지는 뉴스거리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살았던, 유교사상과 눈치보기의 콜라보레이션을 겪으며 자라온 대한민국 이민자의 숙명인가 싶다.
뉴스는 말한다.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을.
세계 곳곳에 발생하는 재난같은 바이러스 상황의 ‘ing’를.
그러나 미국은 말한다.
우리는 다시 축제 중이니, 조용히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