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스퀘어'에서 색에 대해 생각하다
‘색’ 만큼 오해와 찬사를 동시에 받는 말이 또 있을까? 누군가는 분홍색 벚꽃과 첫사랑을 연결시키고, 누군가는 금색으로 빛나는 별빛, 푸른 바다, 초록 산천 같은 걸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색만큼 오해받는 단어도 없다.
우리 할머니가 즐겨보던 막장드라마에 “빨간 맨 몸으로 시집보내 미안하다”는 대사가 나온 적 있다. 가난한 집이라 시집갈 때 해줄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말이다. 아기가 빨간 벌거숭이로 태어나는 이유 때문인 건 알겠는데, 어쩐지 ‘빨간 몸’인 것이 머쓱해지는 느낌이다. 또 노인들은 원색적인 옷을 보면 “색이 너무 야하다”라고 한다. 그저 노랑 빨강 파랑 원색일 뿐인데 왜 그 알록달록한 색을 보고 “야하다”라고 할까?
‘색기’도 마찬가지다. 서양이라면 ‘화려하고 매력적이게 생겼다’고 말하고 말 것을, 우리는 ‘색기 있다’는 말을 앞세워 화려한 외모를 깎아내리고 싶어 한다. 게다가 ‘본색’이라는 말은 어떤가? 영어로 하면 True color. 그런데 주로 ‘너, 본색이 드러났구나?’ ‘본래는 아주 나쁜 놈이었구나’ 같은 의미로 자주 쓰인다.
우리가 유치원에서 배우는 무지갯빛은 단 일곱 가지였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는 색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산다. 누군가에겐 찬사이고, 누군가에겐 미안함이고, 누군가에겐 머쓱함이고, 누군가에겐 나쁜 화려함이고, 누군가에겐 배신이고 깎아내리는 말이 되어버린 색. 색은 어쩌면 그저 예쁠 뿐인데 매일 찬사와 오해 사이를 오가며 억울해할지 모른다.
내가 사는 뉴욕은 색이 많다. 천편일률을 벗어난 사람들과 각종 산업이 다 모여있는 탓인지는 몰라도 뉴욕에는 색이 너무 많다. 더러는 ‘눈이 다 아플 지경’이라며 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또 더러는 그 ‘색의 향연’ 때문에 뉴욕을 찾기도 한다.
뉴욕에서 색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바로 타임스퀘어다.
타임스퀘어에 발을 디디는 순간 눈앞에는 온갖 색이 시야를 침범한다. 네온사인, LED 전광판, 광고 포스터, 각종 간판, 조명,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호객꾼들. 말 그대로 '세상을 비추는 티브이'라고 할 만하다. 이 세상의 모든 색은 아마 타임스퀘어에 전부 모여 있는 것 같다. 빛의 색, 속도의 색, 자극의 색, 온도가 느껴지는 색으로 가득 찼다.
광고판 하나하나가 초단위로 쉼 없이 바뀐다. 색, 그림, 사진, 텍스트, 이미지가 끊임없이 흘러간다. 정지되어 있지 않다. 살아 움직인다. 음악으로 치면 컬러풀한 전자 음악이고 영화로 치면 화면이 빠르게 바뀌는 히어로물이다. 색의 소음, 색의 흥분이다.
버스킹을 하는 댄서들이 내뿜는 에너지, 번쩍이는 네온사인, 캐릭터 옷을 입고 관광객에게 사진을 찍자고 유도하는 사람들, 사진작가들과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구걸하는 자와 전도하는 자와 홍보하는 자들. 조화보다는 충돌이고, 평온보다는 흥분인 곳.
이곳의 색은 자연이 주는 색이 아니다. 인간이 발명한 색의 집합체다. 기술과 상업이 인류의 환상을 만나 거대한 욕망덩어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안을 걷다 보면 내가 광고 속에 들어온 건지, 실제 사람인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타임스퀘어에 있다 보면 '이러다간 시력을 잃거나, 정신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자아를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걷다 보면, 느닷없이 초록 잔디와 조용히 책 읽는 사람들로 가득한 브라이언트 공원이 나온다. 티브이를 끄고 세상 밖에 나갔다는 안도감과 평온함이 몰려온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고 우리를 매혹시키는 여기는, 뉴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