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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네오 Sep 23. 2020

내겐 너무 불편한 면접이라서

절실함은 불편함을 이기더라


하루에도 수십 번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지만 나는 나에 대해 너무 모른다.


모르고 살아도 될 줄 알았다. 어떤 단어로 정의하지 않아도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날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구 상에서 나만 숨 쉬고 있는 게 아니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굳이 나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두와 진득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기에.


특히 면접에서는 '자기 PR'을 할 수 있는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 간단한 자기소개 한 번 해보시겠어요?

- 차별화된 본인만의 강점이 있나요?

- 본인 성격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평소 마주하지 않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면접관의 질문들이 무척 당황스럽고 거슬렸다.

'내가 말하는 걸 이 사람이 얼마나 믿을까', '미리 준비해서 대답한다는 건 예쁘게 포장된 거짓말이 아닐까', '좋은 점만 보면서 살기에도 모자란데 내가 왜 일부러 약점과 단점을 발견하고 설명해야 할까'

그들이 날 궁지에 몰고 공격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의 벽을 치기 바빴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심한 불편함을 느꼈다. 이력서 작성을 그만뒀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된다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다. 그럼에도 이 말을 익숙히 들어왔다는 건 그만큼 효과를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쳐다도 보기 싫은 일이라면 일단 잊어버리는 게 좋다. 어느 날 그 일이 문득 떠올랐을 때(혹은 필요해졌을 때)는 이미 달라져있을 것이다. 상황이 바뀌거나 내가 바뀌거나. 둘 다 바뀌거나.


코로나로 인해 기업은 채용 인원을 줄였고 취업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 면접(AI 면접, 화상 면접)을 도입하기도 했다. 정부의 압박이든 기업의 필요에 의해서든 누군가를 뽑긴 뽑는다. 좁아진 취업행 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오늘도 많은 취준생들이 자신을 어필한다. 


인사 담당자는 끊임없는 구애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진부한 '자기 어필'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것도 결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지원자의 배우 뺨치는 연기에 속아 넘어갈 수도 있지만 최소한 '준비성'을 갖춘 자라는 점에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게 진실이라면 자기 객관화에 솔직함까지 더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


상황은 전보다 악화됐다. 그러자 현실에 눈이 떠졌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내 가치를 알아봐 주지 못한다. 만약 내가 보석이래도 이젠 아무도 흙 속에 파묻힌 진주를 찾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깔끔하게 정제된 자신만의 색깔을 발산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형형색색 펼쳐지는 불꽃놀이에 초점을 잃지 않길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수집가는 매력을 뽐내고 있는 원석을 잘 고르기만 하면 된다. 보석이 될 준비를 마친 원석이면 충분하다. 그게 다이아몬드라면 대박인 거고.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됐다. 상황이 바뀌었고, 나도 바뀌었다.

가식적이고 불필요하다 생각했던 절차들 사이에서 구직자의 절실함이 보였다. 절실함은 불편함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낯설고 어색하지만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자꾸 보니 익숙해지더라. 글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더듬고 현재의 생각으로 정리한다는 점이 같다.


어쩔 수 없이 나를 어필해야 한다면 제대로 준비하는 게 낫다. 면접은 능력이 아닌 노력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 사람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는지,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짧은 시간 안에 평가한다. 타고난 능력이 아닌 준비된 노력을 보는 거라면 제법 공정한 방법이지 싶다. 면접이라는 단어에 가졌던 색안경을 벗었다.


친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다가갈 마음이 생겼다. 이건 면접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지금의 노력이 언젠가는 제 빛을 발할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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