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일기를 즐겨 쓰지도 않았던 내가 에세이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피천득의「인연」을 만났기 때문이다.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담백한 글과 아름다운 묘사. 그가 바라본 세상은 따스한 생기로 가득했다.
그저 그의 세상을 관찰했을 뿐인데 흩어져 있던 여유와 사랑의 온기가 나를 감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수필을 '마음의 산책'이라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지나간 시간과 감정을 되짚어 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기 때문일까.
코로나 시대에 산책을 하려면 마스크를 껴야 하지만 여기선 자유롭게 숨 쉬면서 주변을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다. 여느 때보다 마음의 산책이 필요한 시기다.
모든 것이 정체되고 미뤄지는 이 시기에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급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이곳저곳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했지만 돌아오는 건 인내심과 영혼 없는 위로뿐이다.
'괜찮다. 괜찮다.' 다독여도 거절에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다. 특히 그게 내 이야기라면.
말해도 듣는 건지 모르겠는 일방통행 자기소개를 쓰다 보니 '열정 있고 신념 가득한 나', '탁월한 문제의식을 갖고 능동적으로 앞장서는 나' 보다 '꾸밈없고 감정에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싶어 졌다. 내게 산책이 필요하단 신호였다.
그렇게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고, 운 좋게 브런치 작가가 됐다. 오랜만에 받은 축하 답신은 정말 짜릿했다.
내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더 이상 나를 잃어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소중함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록으로 남겨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문장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상황이나 무의식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단면이 활기를 얻어 입체적 형상이 되는 순간이다.
나를 더 나답게, 당신을 더 당신답게 보여주는 에세이가 좋다.
그리고 이왕이면,
아무런 생각 없이 발을 내딛어도 언제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산책로 같은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