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계산에 지고, 속도에 밀렸다
"법적으로 음악은 브라운이 맞아."
다이나믹듀오 곡의 그 가사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브라운. 합정 어딘가, 오래된 리듬이 흘러나오던 밤의 공간. 그곳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합정으로 이사 온 이후 한동안 나는 그곳을 실험실처럼 여겼다.
음악이 시작되면 말이 멈추고, 박자가 흐르면 서로의 눈이 흐트러진다. 어쩌면, 사람의 본모습은 리듬을 대하는 자세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몸을 맡기기만 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느슨해졌다. 외로움도, 기대도, 다 박자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20대 후반의 긴 연애가 끝난 뒤였다. 그 사람과의 시간은 아쉬움보다 무게로 남았고, 그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나는 자주 사람을 만났다. 가볍게 웃으며, 가볍지 않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면서. “2차는 와인, 3차는 브라운.” 그 시절, 내가 자주 꺼냈던 말이다. 사람들은 장난인 줄 알았고, 나도 장난처럼 웃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새벽까지 음악을 공유한다는 건, 단지 취향을 나누는 일이 아니었다. 그 밤의 공기와 리듬을 함께 견디는 일이었다.
나는 클럽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지만, 사실 그 말은 반쯤만 맞다. 복잡한 조명과 크게 튼 스피커 속에서 나는 오히려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다만, 대부분의 클럽이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나를 멈추게 했다. 아무리 리듬이 좋아도, 숨이 막히는 공간에서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브라운이 좋았다. 거긴 금연이었다. 춤추는 공간에서 숨이 붙어 있다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숨을 들이마시며, 마침내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30대가 된 뒤에도 그곳에선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자유롭게 나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평소처럼 웃으며 장난을 섞어 말했다. “브라운 같은 데 3차로 가면 좀 낭만 있지 않아요?” 그가 웃으며 잔을 들어 보였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말을 잇는 와중에 어느새 취기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말이 그냥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가 물었다.
“진짜로 가볼래요, 거기?”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이 사람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 브라운이 금연이라는 것, 그리고 오늘은 조금 더 나를 열어도 될 것 같다는 기분.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무작정 쫓아간 게 아니라, 언젠가 장난처럼 흘려보냈던 나의 취향이 누군가에게 가닿은 순간이었다.
새벽 두 시 반. 우리는 맥주잔을 손에 들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무대 앞으로 갔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음악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박자에서 몸을 맡기는지를 지켜봤다. 그날의 대화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마지막 곡이 흐를 때 웃으면서 말했다. “이 비트는 너랑 잘 어울린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별 뜻 없는 말인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 순간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그냥 스쳐도 될 말이었는데, 그날의 나는 그 말을 꼭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맞춰지는 기분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결국 잘 되지 않았다. 감각이 맞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닿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 밤은 여전히 내 안에 선명하다. 그가 잘 되지 않았던 수많은 소개팅 중 한 명이 아니라, 나의 리듬을 흩트렸던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20대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다. 재밌는 사람, 재밌는 곳, 재밌는 말들.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나의 취향을 만들어 나가는 시기라고 여기고 경험했다. 그런 20대를 보내어 취향이 또렷해진 30대가 되었다. 조용한 전시를 좋아하고, 특정 장르의 음악에서 맥을 짚고, 낯선 장소보다는 익숙한 무드를 고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부터, 이제는 그런 거 하면 안 되는 나이란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 있는 취향인데. 막 자라난 감각인데. 왜 늦게 피어난 것들은 항상 빨리 꺾이길 강요받는 걸까.
나는 여전히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그 음악 안에서, 누군가와 마주치길 바란다. 브라운은 그저 그 감각의 스냅샷일 뿐이었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박자에 잠시 기대는 일이다. 어디든, 어느 순간이든.
클럽보다 나는 페스티벌이 좋다. 무대가 작아도, 무리가 있어도, 그 여름의 소리와 조명을 함께 기억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익숙한 곡일지라도 추억에 같이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예상하지 못한 드롭에 동시에 환호하며,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취향에 물드는 관계. 누군가와 그렇게 살아가는 일에 대한 낭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취향은 나이 드는 것의 가장 아름다운 산물이고, 그걸 버리기엔 우리는 아직, 너무 살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좋아해도 되는 나이였으면 좋겠다.
이건 누군가의 문학적 상상이 아니다. 책상 앞에서 꾹꾹 눌러 쓴 이야기도 아니다.
서른 즈음, 한 번쯤은 자기 감각을 믿고 싶었던 어느 여자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