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언젠가 시든다는 걸 알면서도 피어나는 용기, 그 짧고 선명한 생의 순간이 마음을 건드린다. 집을 꾸미는 장식용이 아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내 감정이 먼저 반응하기에.
어젯밤, 노란 장미 다발을 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날따라 내 시야가 조금 더 예민했고, 그 노란빛이 거기 있었다. 요란한 홍대의 밤거리. 시끄러운 음악과 겹겹의 대화들, 그 가운데 나는 장미를 안고 걷고 있었다. 꽃을 들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내가 풍경 속에서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소란한 거리에서는 오히려 내 마음이 또렷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지나갔고, 나는 장미를 안은 채 조용히 그 틈을 걸었다. 방향 없는 밤이었지만, 어쩐지 그 순간의 나는 조금은 지켜지는 기분이었다. 장미다발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 존재감은 또렷했다.
습관처럼 산책을 한다. 낮이든 밤이든. 무언가를 정리하려던 것도, 기억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예뻐서 걸음을 멈췄고, 안고 걸었다. 그 순간의 선택이 내 산책하는 감정을 다르게 만들었다. 그날 밤의 공기와 장미의 향에 천천히 동화되었고, 누군가는 노란 장미를 들고 운동복 차림으로 홍대 거리를 걷는 나를 생소하게 쳐다봤으리라.
한때는 꽃이 마음을 대신해준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20대 후반의 어느 아침, 문 앞에 꽃이 도착했다.
택배 박스 안에 담긴 연보랏빛 리시안셔스.
나는 무심코 꽃말을 찾아봤고,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문장을 그 자리에서 읽었다.
그날 아침,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꽃, 오빠가 보낸 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어젯밤 그 꽃말을 보고, 너한테 전하고 싶었어."
그 말은 짧았지만 오래 남았다.
나는 그 꽃을 며칠간 꽃병에 꽂아두었다. 햇빛 드는 거실 한켠에 조용히 놓고, 그 향이 방 안에 퍼지는 걸 바라봤다. 마음 한편이 그 꽃을 통해 들리는 듯했다. 그가 내게 준 건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기억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꽃은 시들었고, 우리는 멀어졌지만 그 마음은 향처럼 남았다.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은 꼭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그걸 기억해낸다. 기념일마다, 미안할 때마다, 예쁘게 포장된 꽃을 들고 나타난다. 늘 고맙고, 언제나 마음은 움직인다. 나는 그런 마음에 쉽게 반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더 깊이 반응하게 되는 건 아무 일도 없는 날, 문득 내 생각이 나서 들고 온 조용한 꽃이다. 그건 설명 없이 다가오는 마음이라서, 더 오래 남는다.
그렇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그런 꽃이다. 이유 없는 선물처럼 다가오는 그 마음은, 설명이 없어서 더 선명하다. 그런 꽃은 오래 남는다. 마음보다 먼저 꽃이 떠오르고, 그 꽃 너머로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산책길 또는 퇴근길에 작은 꽃집 앞에서 멈춰 선다. 일상 한가운데에서, 아무 일 없던 날 문득 떠오르는 사람처럼 그런 특별한 날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