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통해 보는 세상은 미쳐가고 사람들은 공포 속에 떨며 신음하고 있다. 이런 난리 통에도 나는 밤이면 책과 펜을 든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하지만 내가 책과 펜을 팽개쳐 버린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세상은 계속 미쳐있고 사람들은 계속 아프다.
내가 책과 펜을 들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역시 없다.
오늘 쓴 한 줄이 미친 세상을 바꾸진 못했고 혼란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도 건네지 못했다.
문 닫은 작은 책방에 남아 있던 책들은 무서운 코로나 19 재난 속에서도 안전하게 택배기사의 손에 들려 정확하게 나에게 배달되었다.
나는 먼지 묻은 책들을 어루만지고 미안함에 엽서를 살짝 끼워둔 책방 지기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한 달에 한번 업데이트할까 말까 하는 SNS에
<꽃샘추위 속에도 봄은 이미 와있으니까.
우리 너무 두려워 말아요.
우리 조금만 더 힘내요.>
라는 글귀를 올리고 세상에 전쟁이 터져도 나는 이렇게 의연합니다. 뻐기듯이 글을 썼지만 사실은 일주일간 쪼그라져 있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세상은 항상 말한다.
작가란 모름지기 내면의 힘을 지녀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펜을 잘 다루기 위해 스스로를 한 달, 석 달, 심지어 1년도 거뜬히 가둘 수 있어야 한다.
밖이 두려워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굳이 나갈 필요가 없는 사람. 세상일에 귀는 열어두되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사람.
작가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허울 좋은 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지난 한 주간 바이러스 따위에 두려워 떠는 찌질이었고 그 와중에 팔리지 않아 돌아온 책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습관처럼 책을 들었지만 머리엔 들어오지 않았고
펜은 들었지만 세상을 신랄하게 꼬집거나 따뜻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했다.
쪼그라진 한심한 자신에게 다짐하는 한마디를 나는 아닌 척 SNS에 올리는 쫄보였다.
그놈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내면과 그 속에서 화산 터지듯 솟구치는 강력한 힘이란 것이 무의식 속에라도 내 안에 있긴 한 걸까?
꽃샘추위 속에도 봄은 분명 와 있으니까.
봄비 내리고 파란 잦아들면 오므라진 꽃망울은 기어이 피어날 거야.
꼭 그럴 거야.
그래 그래.
내리는 봄비를 보며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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