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by 희딤

나에게는 두 가지 바람이 있다. 현재를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과 나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로만 시점을 나눈다면 나는 주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불어온 바람에서 지나간 어떤 날이 떠오르고, 스쳐 지나간 냄새에 누군가가 생각난다. 나의 유년은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것이 나를 애어른으로 만들기도 했다. 막상 그 시절엔 괜찮다고 나는 독립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어른들은 예의 바른 내가 아주 예쁘고 대견하다고 여겼다. 시간이 흘러 이제 와보니 나는 떼를 써야 할 때와 울음을 참지 않아도 될 때를 놓쳐버렸다. 겉으로는 어른스러워 보였지만, 감정은 제자리에 머문 채 제대로 자라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싶다. 기쁠 때는 기쁨을 만끽하고, 일상의 소소함에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슬프거나 우울할 때는 동굴에 갇혀있기보다는 의지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나의 힘듦을 들어달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더 큰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이 남에게 민폐가 아니라는 것을 또 나의 지인들은 기꺼이 그 시간을 함께해 주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를 실감하는 방법으로 문득 황량한 곳을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아이슬란드나 나미브사막처럼 거대한 자연 앞에 혼자 서 있는 나를 상상한다. 매섭게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 두 다리가 땅에 꼿꼿이 서 있음에도 휘청거리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고개마저 반듯이 들 수 없는 그런 황량한 곳에서 나의 허무를 마주한다면 막연하게 나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지금껏 살아보면서 이 땅에, 내가 존재하는 곳에 단단히 서 있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유해왔다고 줄곧 느꼈다. 하지만 아니라고,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는 사람이라고, 존재하는 실체라고 스스로 알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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