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by 희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작은 의식은 하루를 마감하며 쓰는 짧은 일기이다. 빨간 몰스킨 미니 노트를 작년 말에 선물로 받았다. 나에게 일기장은 아주 가끔 사는 아이템이지만 한두 달이면 이내 잊혀서 연말에는 결국 버려지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마치 나의 작은 분신처럼 가방 속에 없으면 불안한 존재가 되었다. 미니 일기장인 만큼 쓸 수 있는 공간도 한정적이다. 왼편에는 일주일의 하루씩 일곱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오른쪽은 유선 노트인 형태. 이 노트의 첫 번째 임무는 감사 일기용이었다. 더 가볍게는 하루에 단 하나라도 좋았던 것을 기록하라는 숙제가 담긴 용도. 처음에는 꽤 그 쓰임에 맞추어 감사한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찾아내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의 감정을 다 털어놓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것을 펴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명. 나 자신과 선물해 준 나의 주치의 선생님. 그래서 이 미니 노트는 진료실에서 내가 말하지 못한 것들, 좀 더 내밀한 나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쓰인 글들을 보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더 진하고 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로는 괜찮다고 간결히 표현한 것들이 글로는 나도 모르게 진솔해지나 보다. 올해의 절반이 지난 지금, 엄마와의 긴 여행 며칠,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며칠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써 내려가고 있다. 덕분에 올 한 해는 이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올해는 아마 처음으로 일기장을 끝까지 채우게 될 것 같다. 매일의 반복이 쌓여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처럼, 나의 삶도 이렇게 작은 반복들이 모여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일기장을 넘기며, 내가 살아온 날들이 이렇게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음을, 스스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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