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사주가 떠오른다. 재미 삼아 몇 번 사주를 본 적이 있는데 좋은 말만 듣고 금세 휘발되는 몇 만 원짜리 유흥이었다. 그런데 사주는 아이러니하게 즐겁고 행복한 시기가 아니라 답답함에 무엇이라도 의지하고 싶은 때에 찾는 것이었다. 올해의 유약한 나는 7만 원짜리 사주를 보았다.(사주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아 가격이 오른 것은 충격!) 그 자리에서 ‘공부를 하면 잘 될 해’라는 것과 ‘글을 쓰면 좋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아하, 그렇지 않아도 자격증 시험 신청해 두었는데, 공부해야겠다.’라는 당위성을 부여했고, 이 한 달의 에세이 과정을 선물받으면서 ‘어쩜! 사주가 정말 잘 맞나 봐, 내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외의 부정적인 말은 진작에 흘려버렸다. 지금은 이렇게 사주를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릴 적엔 사주라는 것이 지독히도 싫었다. 특히 엄마가 너를 위해 한 번 봤어라는 반복적인 레퍼토리가 신물이 났었다. 그때에 사주쟁이에게 듣던 말은 줄곧 결혼은 언제쯤 하게 되고 자녀 복이 있다는 류의 말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정해진 것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 시간 도망을 쳤다. 그래서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끈질기게 원하던 그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겠어하며 기꺼이 독거인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정해진 운명이 무서웠다기보다는 그때는 이미 내 삶이 너무도 힘들었는데, 이런 것이 내 팔자라고 받아들이기 싫은 치기 어린 마음이 더 컸다. 나는 운명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을 믿는다. 그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힘을 쏟다 보면, 언젠가 우연처럼 내가 꿈꾸던 미래를 만날지도 모른다. 혹은, 그 미래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선택하는 순간들 속에서, 내가 내 삶의 운명을 조금씩 써 내려간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