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운 좋게도 일에 있어서 평판이 좋은 편입니다. 과거 다른 부처에서도 에이스 사무관 소리는 못 들었어도 최소한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는 있었죠. 그러다 보니 제가 잘못하거나 실수하는 일이 있더라도 상사들이 관대하게 넘어가 준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난처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1
연구원에서 받은 영문 자료를 받아 보고서에 인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영어에 좀 약한 편이어서 자료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중요한 단어를 빼먹었습니다. 국·과장님은 보고서를 보셨지만 거기 적힌 영어에 크게 신경을 안 쓰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 실수를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그 인용한 문구가 중요한 시점이 왔습니다. 과장님께서 예전 보고 자료를 보시더니 내용이 틀렸다며 어떻게 몇 달 동안 이렇게 틀린 자료를 써왔냐고 물으셨습니다. 그제야 저도 오류를 알아차리고 이건 100% 제 잘못이라고 시인했습니다. 그런데 과장님께서는 제 말을 믿어주시지 않고 "이 사무관이 그럴 리 없다, 선배 사무관이 실수한 걸 네가 덮어주려는 것 아니냐"라며 오히려 저를 두둔하셨습니다. 저는 괜히 그 선배에게 불똥이 튈까 봐 제 잘못이라고 끝까지 우겼지만 과장님은 저보고 오히려 마음씨가 착하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2
제가 실장님께 보고를 드리는 중에 오류가 발견되었습니다. 사실 그 부분은 과장님께서 확신이 없으시길래 제가 맞다고 우겨서 집어넣은 것이었습니다. 실장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제가 틀린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장님께서는 그게 무슨 저의 잘못이냐며, 이 오류를 못 찾은 과장과 국장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게 아니라며 제가 넣자고 한 것이라고 실장님께 정정드렸지만, 실장님께서는 여전히 "이 사무관이 뭘 알겠냐"라며 계속 국·과장님 탓을 하셨습니다. 혼나는 중에 더 우기기도 뭣해서 굉장히 불편한 마음으로 보고를 마친 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