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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Apr 07. 2022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세종 경찰서 정보과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한 단체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할 거라며 제가 담당 사무관이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문득 얼마 전 장관님께서 취임사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장관님께서 놀라셨던 게 바로 청사 앞에 우리 부처 때문에 시위하는 게 없었다는 거였거든요. 불행히도 제가 곧 시위가 있을 거란 보고를 첫 타자로 하게 되었습니다.


시위 날이었습니다. 청사 앞에는 의경들과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전에 연락을 줬던 정보과 경찰관은 저에게 가급적 외투는 사무실에 놔두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혹시나 옷이 더럽혀질 수 있다면서요. 시위 장소로 갔더니 사람들이 저보고 숨어있지 말고 나오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밖에 나가려는 저를 경찰들이 막으면서 대화를 하려면 철장 사이로 해라고 하더군요. 경찰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시위 대표자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보고 빨리 끝내려면 윗사람을 시위 현장에 불러 오라더군요. 국장이든 과장이든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두 분 다 외부 일정이 있어 세종에 없으니 대신 저와 대화하자고 했는데, 그건 또 싫답니다. 직급이 낮아서 그랬나 봐요. 몇 시간을 빙빙 돌며 서로 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헤어졌죠.


오후 늦게 대표자가 다시 저를 불렀습니다. 자기들도 시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그래도 뭔가 얻어야지만 갈 수 있지 않겠냐며 제 반응을 떠봤습니다. 이제부터 협상을 잘해야 했습니다. 서로 기싸움이 시작됐죠. 대표는 나중에라도 장관님 간담회를, 안 된다면 차관님 간담회를 요청했고 저는 과장님 간담회까지는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국장님 간담회로 의견이 좁혀졌습니다. 사실 저는 국장님께 미리 그 단체를 만나보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려놓긴 했었죠.


그렇게 서로 간에 타협을 한 뒤 시위는 해산했고, 저도 사무실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시위를 대응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무조건 자기 의견만 고집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도 얻어야 하는 게 있었고 우리도 내줘야 할 게 있어야 했죠. 이 경험은 다른 부처와 협의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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