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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y 12. 2022

세종을 좋아합니다

나는 정말 세종시가 좋다. 그 이유를 10개는 넘게 댈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다들 공감할 만한 이유가 아닌 나만의 이유를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남들을 설득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이유이기 때문에 난 세종을 쭉 좋아할 것 같다. 내가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 하는 도시를 좋아한다니. 이것만큼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도 없다.


#1

내 어릴 적 살던 곳은 창원이었다. 80년대, 90년대 창원은 잠깐 못 보던 사이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 있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곳이었다. 거리에는 항상 여러 대의 타워 크레인을 볼 수 있었고 그 옆애서 아파트와 상가가 지어지고 있었다. 철골 떨어지는 소리, 망치로 탕탕 두드리는 소리, 지지직 거리는 용접 소리 등이 배경음악같이 깔려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조용해질 때면 어색함이 들 정도였다. 나는 이런 소리들을 도시가 살아서 크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도시에 살게 되면서 공사 소리를 듣지 못했다. 고시 공부를 할 때는 가끔 들려오는 공사 소음에 짜증이 났었다. 어릴 적 도시가 살아있다는 순수한 마음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다 세종에 왔을 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공사 소리가 들렸다. 창원처럼 세종도 한창 자라고 있는 도시란 걸 깨달았다. 공사 중인 건물을 볼 때마다 어릴 적 익숙한 감정이 되살아났고, 다음번에 이 길을 지나갈 때 저 건물은 얼마나 완성되어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똑같은 길을 다녀도 다른 느낌의 살아 있는 도시 같아서 세종이 좋다.


#2

세종은 평평해서 좋다. 어릴 적에 창원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땅은 원래 평평한 줄 알았다. 명절에 부산에 있는 외가에 갈 때면 왜 이렇게 언덕이 많고 땅이 울룩불룩한지. 언덕에 지어진 집을 보면 어색했다. 길을 걷는데 산도 아닌 것이 내 눈을 가로막아 서 있고, 그런 오르막길을 오르는 게 어쩔 땐 무섭기까지 했었다. 빨리 창원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부모님께 집에 가자고 졸랐던 건 외가댁이 싫어서가 아니라 부산 땅 생김새가 무서워서였던 것이었어요.


나중에 커서야 알았다. 창원은 계획도시여서 땅을 평평하게 만든 것이고, 부산은 역사가 깊고 오래된 도시여서 그렇다는 것을. 서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서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언덕이 많았던 것도 있다. 걸어서 올라가긴 힘들고, 버스를 타면 버스가 미끄러질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겨울에 땅이 얼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에, 세종은 평평하다. 평평한 땅에 곧게 세워진 아파트들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3

세종은 내비게이션을 안 켜도 차로 웬만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도시가 딱 하나 더 있었다. 창원. 하지만 떠나온 지 20년이 넘은 창원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도시도 바뀌었고 기억도 흐릿해졌다. 창원-진주-대전-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가 자신 있게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어졌나 하고 서글펐었는데, 세종이란 게 떡하니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세종에 있는 길 이름을 외우고 있다. 외곽순환도로와 연결된 세종로, BRT 도로인 한누리대로, 세종을 반으로 가르는 가름로, 세종 청사에서 오송역 갈 때 국장님께서 지름길이라고 알려주셨던 임난수로, 금강 변의 세종시청로, 출퇴근할 때 절재로.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없지만, 내 아내는 길 이름을 나만큼 잘 알고 있다. 둘이서 "집에서 오송역으로 가려면 한누리대로로 가는 것보다 절재로에서 임난수로로 빠지는 게 더 빠르네"와 같은 대화가 될 때면 아내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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