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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Dec 01. 2021

들어가기 전에

사무관이라고 특별히 다르진 않습니다.

저는 평소 혼자 글을 끄적이는 것은 좋아하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글을 쓰는 것은 처음입니다. 특히 저의 직업(공무원)을 밝히고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적으려니 매우 조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몇 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운 좋게도 다양한 자리에서 업무를 하게 되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배운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보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제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분들의 의견이 저에게 배움이 될 수도 있으니깐요. 이런 이유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브런치 작가를 신청해봤는데, 관계자분들이 좋게 봐주셨나 봅니다. 제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말이 많고 길게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글은 최대한 짧게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 내에서 1개의 에피소드와 1개의 주제를 담을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죠. 아, 에피소드는 제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하겠지만,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팩트(fact)보다는 팩션(faction)에 가깝게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수습사무관 첫날 국장님과 오찬(공무원들은 상관이랑 먹는 점심을 주로 오찬이라고 표현합니다)을 하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국장님은 점심을 드시면서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게 있었는지 과장님에게 불평을 잔뜩 하셨습니다. 저는 무슨 내용인지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그게 크게 중요한 사항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치기 어린 마음에 여쭤봤습니다.


"국장님, 제가 잘은 모르지만 큰 부처의 국장이라면 아주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의사결정을 하실 권한이 있지 않나요?"


국장님은 허허 웃으시면서 국장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며, 나중에 공직생활을 더 해보면 자기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일을 돌이켜보면 정말 부끄러운 질문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가 보기에 국장이란 지위가 높은 것은 맞지만, 외부에서는 또 다르게 보더라구요. 예를 들어, 국회에서는 실무자가 나와서 설명해보라면서 국장을 부르기도 합니다. 국장은 부처 안에서의 지위와 부처 밖에서 보이는 지위가 좀 차이가 많이 나는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사무관도 사실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중앙부처 사무관은 더 그렇습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다 하는 실무자입니다. 함께 일하는 주무관이 없는 자리의 사무관은 주무관과 사무관의 업무를 다 해야 합니다. 전화로 민원을 응대하면서 장관님 결재를 받기 위한 보고서도 쓰죠. 중요한 회의에서 부처를 대표해 발언하기도 하지만, 실무자들끼리 모인 회의에서 연구용역 보고서의 맞춤법까지 지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자리에 따라 요구하는 능력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사무관으로서 여러 자리를 거치다 보면 항상 새로운 일을 하는 것 같고, 항상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바보가 됩니다. 이렇게 10번 정도 자리를 옮기고 났더니, 이제는 새로운 자리에 가더라도 크게 두렵지 않게 되었네요. 다음부터는 제가 겪으면서 배운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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