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제일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나보고 '이기적'이란 단어의 뜻을 알려주면서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서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봤을 때 내가 직접 도와야겠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런 내가 공무원이 되고서야 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탕수육이 맛있는 중국집엘 간 적이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탕수육이 새빨간 짬뽕과 함께 나왔다. 조심스럽게 고기 덩어리를 하나 집는 순간 어디서 "꽈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결에 식당 계산대 쪽을 봤더니 남자가 한 명 쓰러져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벌떡 일어나더니 아무 일도 없었는 듯 행동했다. 바로 앞에 있던 종업원도 쓰러진 걸 몰랐는지 계산을 계속했다.
처음엔 몰래카메라인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금방 "별일 아니구나, 술에 취해 잠깐 미끄러졌나 보네" 하면서 식사를 이어갔다. 그래도 자꾸 그 사람이 신경 쓰였는지, 입으로 고기를 씹으면서도 계산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서 있던 그 남자가 갑자기 다시 뒤로 넘어졌다. 영화에서나 본 장면처럼 서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간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나는 깜짝 놀라 그쪽으로 뛰어갔다. 남자는 일어나더니 또 아무렇지 않은 듯 계산을 하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방금 넘어진 건 기억 안 나냐고 물었더니 전혀 기억을 못 하더라. 나는 아무 일도 없다며 괜찮다는 그를 억지로 의자에 앉히고 119에 전화했다. 종업원에겐 그 남자를 잘 지켜보라고 당부하고, 난 일행을 찾아 불러왔다. 그들도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했다.
곧 소방대원 여럿이 왔지만, 그 남자는 한사코 괜찮다며 의자에 일어나려고 했다. 소방대원은 나에게 직접 넘어진 걸 봤냐며 확인했다. 한 번에 믿어주지 않아 억울했다. 그렇지만 당사자가 아니라고 잡아 떼니 별 수 없었다. 그렇게 그 남자가 억지로 일어나다가 소방대원 앞에서 다시 쓰러졌다. 난 놀라면서도 어떤 면에선 다행이다 싶었다. 소방대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그 남자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데려갔다.
자리에 돌아와서 보니 탕수육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짬뽕은 퉁퉁 불어 있었다. 우리는 몇 점 못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내와의 데이트는 엉망이 됐다. 그래도 좋은 일을 했으니 괜찮다며 애써 위로했다.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종업원이 그러더라. 그 쓰러졌던 남자의 일행분들이 대신 계산했다고. 뭘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도 가끔 그날을 되새기곤 하는데, 내가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남의 일에 신경을 썼을까 싶다. 인터넷에서도 모르는 사람을 도와줬다가 오히려 낭패를 봤다는 글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공무원이 되고 나니 모든 사람들이 생판 남 같지가 않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민원인을 대하는 마음 같아서 그런가, 나도 이런 내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