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성격이 비슷하다. 둘 다 예민하지 않은 편이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둔하다며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더라. 그렇지만 우리는 괜찮다.
식당에 갔을 때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아내가 요리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딱 봐도 우리 건 아니었다. 난 요리를 바꿔달라거나 환불해 달라고 할 의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식당에 이런 일을 알려주려고 했다. 그래야 식당이 좀 더 위생에 신경 쓸 것 아닌가. 하지만 아내는 그냥 넘어가자며 머리카락만 골라내서 슬쩍 버렸다. 그러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식사를 계속했다.
그러고 보면 아내는 식당에 관대한 편이긴 하다. 처가댁이 요식업을 해서 그럴 수도 있다. 식당에서 파리가 날아다녀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시킨 메뉴가 아닌 다른 메뉴가 나온 경우에도 먹을만하다면 별 항의 없이 그걸 먹는다. 나도 어딜 가도 무던한 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데, 아내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것 같다.
경제관념에 있어서도 둘 다 둔한 편이다. 아내는 특공으로 분양받은 집을 전세 줬는데, 5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전세 보증금을 올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올릴 수 있었지만, 크게 경제적으로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귀찮은 점도 있기 때문이었다. 세입자가 고마웠는지 명절에 한우를 보내준 적도 있을 정도였다.
나라에서 공짜로 준다는 재난지원금도 받지 않았고, 누군가 주차한 차를 긁었어도 허허 웃고 넘어가며, 통장도 각자 월급통장 딱 하나씩만 쓰고 있다. 심지어 그 흔한 주식을 포함해 투자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둘 다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비싼 취미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공무원 월급만으로 충분히 지내면서 대출금도 갚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풀어보자면, 우리는 결혼도 무척 쉽게 했다. 혼수도 따로 하지 않았고, 집안끼리 하는 선물 공세도 없었다. 결혼 후에도 부모님 용돈이나 생신선물 같은 걸로 싸운 적이 없다. (사실, 싸우는 일 자체가 없다) 아내가 처가댁 집을 리모델링하는데 돈을 좀 보태드리자고 했을 때 난 금액을 묻지도 않고 최대한 많이 드리라고 했다. 아내도 우리 부모님께 생신 선물을 챙길 때 돈을 전혀 아끼지 않는다. 가족 사이에 돈 문제로 티는 안내도 섭섭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우리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
얼마 전에 쿠팡에서 배달시킨 계란 몇 개가 깨져 있었다. 난 살짝 기분이 상해서 아내에게 쿠팡 별로라고 일렀다. 하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계란을 버리는 아내를 보며 또 반성했다. 아내의 무던함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결혼은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