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Sep 24. 2024

공무원이 민원을 넣으면 생기는 일

20대 공시생이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한 적이 있었다(관련 뉴스 링크). 이 사건을 계기로 세종청사 보안 시스템이 강화되었다. 종전에는 공무원증만으로 출입이 가능했는데, 이후부턴 얼굴을 인식해야지만 출입이 되도록 바뀐 것이다. 갑자기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어서 그랬는지 얼굴인식이 잘 안 되어 출입을 못하는 문제가 자주 나타났다. 시스템 오류로 출입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애꿎은 청사 청원경찰들만 욕먹었다.


당시 얼굴인식 카메라는 위아래 두 개가 달려 있었다(지금은 새로운 기기로 교체되었다). 키가 큰 사람들은 위쪽 카메라가 얼굴을 인식하고 작은 사람들은 아래쪽 카메라가 인식했다. 다만, 나같이 키가 작은 남자의 경우에는 위쪽 카메라가 찍으면 정수리랑 이마 사진이 찍혀서 인식이 안되고, 아래쪽 카메라가 찍으면 목과 턱이 찍혀서 인식이 안되었다. 할 수 없이 출입 때마다 아래쪽 카메라가 인식되도록 다리를 구부렸어야 했다.


나는 무슨 일이 터졌다고 급하게 그것도 전면적으로 얼굴인식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어차피 공무원만 불편함을 참으면 된다는 점에 분했다. 그래서 나 역시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평소 청사관리소에 연락할 땐 전화도 안 받더니, 국민신문고에 글을 남기니깐 바로 전화가 왔다. 국민신문고의 힘은 대단했다.


담당 공무원은 얼굴인식 시스템이 처음 도입 되는 바람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최대한 빨리 개선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뻔한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얼굴인식 때문에 힘들다며 국민신문고에 내가 적은 글을 지워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그제야 나도 이미 위에서 방향이 정해진 정책이라 그 공무원이 무슨 힘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수많은 민원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 미안한 마음까지 생겨서 곧바로 글을 지웠던 적이 있다.




한 번은 지자체 공무원이 국민신문고로 민원을 넣어 내가 처리한 일이 있었다. 처음엔 민원인이 공무원인 줄 몰랐지만, 질문 내용을 보니 공무원임을 알겠더라. 그때 난 '아니, 그냥 나한테 전화하면 바로 알려줄 텐데, 전화 한 통 없이 굳이 국민신문고에 썼어야 했나'라며 속으로 불평을 했다. 그랬다가 예전에 내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당시 담당 공무원에게 다시 한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는 궁금한 사항이나 불만 사항이 생기면 바로 전화를 하거나 메일로 남기지, 국민신문고를 이용하진 않는다. 이미 담당자는 더 급하고 더 중요한 민원을 처리하느라 바쁘고 정신없을 텐데, 굳이 나까지 나서서 괴롭힐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무원끼리는 서로를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