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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유학의 길

by 킹오황

운이 좋았다. 2:1의 면접 경쟁률을 뚫었다. 경쟁자들이 다 타 부처에서 내로라하는 사무관, 서기관들이기에 열심히 준비했지만, 운이 따라주었단 말을 꼭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그렇다. 나도 유학 지원을 받게 되었다. 작년에 아내가 선정되었기 때문에 동반 휴직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올해에 나도 선정되었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2년 예정이었던 미국의 체류 기간도 3년으로 늘었다.


면접을 준비하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내가 원체 좀 뻔뻔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는데 망설임이 없다. 심지어 유학과 관계없는 후배에게도 훈련계획 발표 스크립트를 보여주면서 의견을 들을 정도였다. 아내는 여기저기 연락하는 내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어떤 면에선 대단하다고 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다니, 떨어지면 어쩌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남이 나에게 도움을 구하면 선뜻 도와주려고 하듯, 나도 필요하면 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평소에 운을 많이 쌓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물론, 발표가 난 이후에 한 명 한 명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스타벅스 쿠폰을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면접을 준비할 땐 아내의 역할이 가장 컸다. 퇴근 후에 아내와 모의 면접을 봤다. 아내는 면접관이 되어 질문을 했고, 나는 그 앞에서 대답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준비가 덜 되었으니 많이 버벅거렸다. 나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외우게 될 테니깐 하며 걱정이 없었는데, 아내는 아니었다. 모의 면접을 그따위로 해놓고도 옆에서 쿨쿨 잘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속이 탔다더라. 나중에 결과가 나오고 한 말이지만, 나의 태연한 모습이 어떤 면에선 대단해 보였단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람이 참 여유가 있어 보여서, 그건 배울만한 점이라고 했다. 여하튼 그런 아내의 걱정과, 채찍질과, 응원(?) 덕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




배부른 소리긴 하겠지만, 미국 체류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늘면서 진짜 사소하게 들리지만 나에겐 심각한 걱정도 하나 생겼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한국 나이로 50이 넘을 거 같은데, 그때 난 여전히 사무관일 것이다. 내가 예전에 우리 부처가 승진이 느려도 일이 마음에 들어서 괜찮다 그래왔었지만, 그래도 행정고시까지 보고 들어왔는데 나이 50이 넘을 동안 승진 한 번 못해보는 건 좀 슬플 거 같다. 무능력해 보일 거 같기도 하고.


우리 부처가 승진 느린 건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내가 전에 있던 부처 동기들은 서기관은 진작 달았고, 과장까지 단 녀석들도 몇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모른다. 가끔 오랜만에 뵙는 친척들에게 왜 아내랑 나랑 직급이 다른지 설명하는 게,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해명하는 것처럼 들려 부끄럽기도 하다.


나중에 미국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내 분은 서기관이신데, 남편 분은 10년을 넘도록 승진을 못하셨군요.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나 봅니다.'


누가 직업을 물으면 공무원 아니고, 그냥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브런치에 자주 찾아와 소식을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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