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English is good, but

by 킹오황

인생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 잘되는 것 같다가도, 혹은 안 되는 것 같다가도 항상 뒤에는 but이 나온다. 그래서 재미있다.


이번 미국은 2번째이다. 20년 전에 어학연수란 명목으로 미국에서 9개월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 다시 오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그때 미국은 맛보기에 불과했었다.


전에는 고모 집에 얹혀살았기 때문에 집, 전기, 수도, 인터넷 같은 걸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핸드폰이나 학교 행정 처리도 사촌 형이 다 도와줬기 때문에 적응이랄 게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내랑 함께 집 계약부터 유틸리티 연결까지 전부 우리가 해야 했다. 한국에서 확실한 신분을 보장받던 공무원이었으나, 미국에서는 신용이 없기 때문에 계약 하나하나에 디파짓을 내야 하는 서러움도 겪었다.


운전도 쉽지 않았다.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좌회전 신호등보다는 비보호 좌회전 신호가 많았다. 아직 미국의 운전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을 할 때마다 마치 신호위반을 하는 것처럼 심한 거부반응이 왔다. 저 멀리 반대차선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차를 보면 충분히 좌회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쉽사리 액셀을 밟지 못했다. 먼저 오신 분들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고 그런다. 그래도 밤에 가로등도 없는 1차선 도로를 제한속도 시속 55마일(88.5km)로 쌩쌩 달리는 건 어렵다고 한다. 나도 노루를 한번 칠 뻔 한 이후로 밤 운전은 최대한 자제하는 중이다.




미국에 오기 직전에 University of Georgia(UGA) Law에서 나를 waitlist에 올렸다고 연락이 왔었다. 마치 뽑아줄 것처럼 지원해 보라 하더니 대기명단에 올린 것이다. 미국에 와서는 담당자에게 한번 만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고, 우리는 인터뷰를 가졌다. 안 되는 영어로 열심히 내가 왜 UGA에 다녀야 하는지 설명했다. 담당자는 미국 로스쿨에서의 토론식 수업에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했나 보더라.


그때 그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Your English is good... but not great."


good까지만 듣자마자 내가 "오~ 쌩큐"라고 말했는데, 뒤에 말까지 다 듣고선 아내가 옆에서 웃었다. 영어도 끝까지 들어야 한다.


담당자에게 바로 이미 개인 과외도 받기 시작했고, 가을 학기 시작 전까지 유튜브 등 영어 공부를 할 거라는 계획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 열정적인 모습이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담당자가 먼저 나서서 학교 투어까지 시켜줄 정도로 말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한 시간도 못되어 바로 Admission 메일을 받았다. UGA가 아니면 아내랑 따로 살아야 할 위험도 있었는데 합격해서 다행이란 마음이 가장 먼저였다. 아내랑 CC가 되어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된 것도 기뻤다. 예언하건대, 조만간 우리 집은 UGA 잠바, 머그컵 등 기념품으로 가득 찰 것이다.


애틀랜타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공무원 동기가 그랬다. 자기가 1년 먼저 미국에서 살아봤는데, 여러 가지 할 생각 하지 말고 딱 하나만 잘해도 미국 생활을 성공한 거라고 한다. 공부든, 영어든, 아니면 골프든. 그때 나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도저히 감도 안 잡혀서 웃기만 했다.


UGA Law에서 나처럼 변호사가 아닌 사람을 뽑은 경우는 굉장히 예외적이라고 한다. 이렇게 흔치 않은 공부의 기회가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해 LLM 과정을 들어야겠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영어, 특히 법률 영어에 집중하고,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지낼 각오를 해야겠다. 다시 대학생이 된 거 같아 가슴이 떨린다. 25년 전에 노느라 성실하지 못했던 대학 생활을 제대로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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