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유학 중에 가장 큰 지출은 바로 차를 사는 것이다. 우리의 미국 적응은 차를 사면서 일단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지아주에서 차를 사기 위해서는 먼저 조지아주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조지아주 운전면허국(DDS, Department of Driver Services)에 면허증을 신청해서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영사관에서 한국 면허증에 대한 번역 공증 레터를 받아오면, 조지아주는 협약이 되어 있어 간단한 시력검사만으로 면허증을 발급해 준다. 당일에는 임시면허증을 발급, 몇 주 후에 실물 플라스틱 면허증을 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 사회보장번호(SSN, Social Security Number)가 없는 사람은 미리 사회보장국(SSA,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 가서 SSN 관련 서류(보통 우리는 SSN 발급 거부 서류인 Denial Letter)를 받아야 한다. 조지아에 살고 있다는 거주 증명 서류도 2개 필요한데, 집 계약서, 은행 등에서 실제 나에게 보낸 우편물 등을 가져가면 된다.
(참고로 이 절차는 최소 몇 주는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미국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차를 렌트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선 국제운전면허증을 한국에서 발급받아 오는 게 필수다)
우리는 미리부터 미국에 계시는 지인을 통해 애틀랜타에 있는 영사관에 공증 레터를 신청했기에,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당일에 바로 영사관으로 가서 공증 레터를 받았고, 은행 계좌를 만든 후 은행에서 우편물을 받자마자 SSA에 가서 Denial Letter를 받고 DDS로 가서 면허증을 신청했다. 물론 이 과정이 평탄하진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Athens DDS에서는 Denial Letter가 이상하다며 거절당하는 바람에, 발급을 쉽게 해 준다고 알려진 좀 멀리 있는 Norcross DDS로 가서 받았다. 같은 서류인데도 지점과 담당자에 따라 발급 여부가 결정되는 걸 보면, 미국은 현장에서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배웠다. 여기까지 10일 정도 걸렸다.
(참고로 우리는 차를 한 달 동안 렌트해서 다녔기 때문에 나름 여유가 있었지만, 다른 유학 오신 분들은 하루하루 렌트 비용을 내야 했기 때문에 면허증 발급과 차를 구매하는 것을 타임 어택하듯 최대한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
새 차를 살 금전적 여유는 없었으므로 중고차를 알아봤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공무원분들의 차를 이어받거나, 한국인 딜러를 통해 중고차를 싸게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차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다소 비싸더라도 대기업을 통해 구매하기로 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CarMax에 가기로 했다. 온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Honda의 CR-V를 선택했다. 공무원으로서 수입차를 산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다시 되팔아야 한다는 점이나 길 한가운데서 고장 나면 정말 답이 없다는 점들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한 공무원 동기가 말한 '혼다는 전후(戰後)에 본격적으로 성장한 회사'라는 이야기가 나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CarMax에서 연식, 마일리지, 트림 등을 고려했을 때 마음에 드는 차는 플로리다에 있었다. 배송비 200불을 내면서 2주 후에 시승 일정을 잡았고,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며칠 동안 미국 은행에 송금했다. 당시 환율이 매우 높을 때여서 떨어지길 기다렸지만 점점 더 오르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환전했다. 안타깝게도 일주일만 더 기다렸다면 환율이 내려 1~2백만 원은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우리 같은 일반인은 환율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른 이야기지만, 환율이 떨어지자마자 인사혁신처에서 바로 학비랑 체재비를 보내주는 걸 보면서 다음부터는 인사혁신처에서 돈을 보내줄 때 우리도 함께 환전하기로 했다)
차를 보러 간 날 하필 비가 왔다. 아니 오히려 이럴 때 와이퍼 동작도 확인하고 좋은 기회라고 위안하며 시승을 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했다. 큰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카드 결제도 안 된다길래 우리는 은행으로 가서 수수료도 꽤 내면서 cashier's check을 발행했다. CarMax는 차를 새로 산 고객의 산뜻한 새 출발을 위해 차에 리본을 걸어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별 거 아닌 거 같아 보여도, 막상 저때는 신이 좀 났었다.
(참고로 자동차를 등록한 날부터는 임시운행허가를 번호판에 붙여서 다니고, 몇 주 지나서는 실제 철제 번호판과 자동차 등록증이 우편으로 날아온다. 그럼 번호판을 내가 직접 차에 달면 된다)
CarMax의 장점은 투명성과 신뢰성이다. 차량의 운행 이력이나 사고 이력을 모두 확인할 수 있고 회사 차원에서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구매 후 30일 동안 웬만한 수리는 지원이 되는데, 실제로 나도 구매한 지 2주 만에 빗길에 운전하다 와이퍼가 한 짝이 날아갔을 때 무상으로 교체받았다. 거기다 CarMax의 MaxCare란 보증 연장 프로그램에 가입했는데 2천 불 정도를 내면 10만 마일까지(우리가 4.5만 마일 차를 구매했으니 5.5만 마일 더)는 엔진, 변속기, 전자장치 등 중요 부품에 대한 수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자동차 등록 등 서류 작업을 다 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CarMax 협찬받아하는 홍보는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도 블루투스도 안 되는 특별한 기능이 없는 오래된 차만 몰고 다니다가 2022년형 차를 몰게 되니깐 신세계였다. 구글 맵과 연동되는 CarPlay, 크루즈(ACC, Adaptive Cruise Control), LKAS(Lane Keeping Assist System), BSI(Blind Spot Information), 전동트렁크, Auto Idle-Stop 등등. 왜 내가 이런 걸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러 편한 기능들 때문인지 운전하는 데 부담이 줄어든 건 사실이었다. 덕분에 낯선 도로에서 긴장하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고, 이제는 외국인이 아니라 현지인으로서 이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
어쨌든, 우리 차가 생기면서 미국에서 우리의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 제2의 집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우리는 차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그만큼 차에도 정이 들고 있다. 2년 반 동안 함께 안전하고 즐거운 추억을 쌓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