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이 더 바쁘다. 하루도, 일주일도, 한 달도 금방 지나간다.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다. 누구는 미국에서 할 게 없어서 지루했다고도 하는데, 사람마다 다른가 보다.
한국에서는 업무 시간에 자기 일만 하고 나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든 괜찮다는 면죄부를 받았다.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좋겠지만,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 어려운 기회로 미국까지 왔는데 시간을 허투루 보내긴 너무 아쉽단 생각이었다. 한국에선 할 수 없으면서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로 내 일상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면 TV를 켠다. 주로 보는 채널은 FOX 5 ATLANTA. 애틀랜타의 지역 뉴스를 다루는데, 여기는 애틀랜타와 가까운 곳이라 날씨, 교통, 범죄 등 여러 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얼마나 총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지가 내 관심사항인데, 미국답게 하루 이틀마다 총기 범죄가 일어나는 것 같다. 가끔 미국에 도착한 첫날 나를 바로 앞에서 지나친 허리춤에 총을 차고 있던 문신 가득한 남자가 떠오른다. 총과 관련된 경험은 그게 마지막이길 바란다.
그리고 시리얼과 우유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골프가 없는 날에는 수영장에 가려고 한다. 솔직히 자주 못 간 날도 많지만,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수영을 다녀왔기에 자신 있게 이렇게 쓴다. 수영장에 가면 1인 1레인을 쓸 수 있어서 한국에선 꿈도 꾸지 못할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다만,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일이 없이 혼자서 수영을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하진 못한다. 미국에선 골프 라운드 비용도 저렴하기 때문에 (가족이서 약 천 불만 내면 조지아주 주립 골프장을 1년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필드에 나갈 기회가 한국보다는 많다. 아니, 한국에선 골프를 해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
아내가 학교에 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나면 영어 공부를 한다. 미국 넷플릭스에는 West Wing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우연히 접할 수 있었던 드라마로, 최애로 꼽는 드라마인데, 공무원이 된 후로 한국에선 도저히 정식으로 볼 방법이 없었던 거다. 미국에 있는 동안 이 드라마의 스크립트를 가지고 챗지피티랑 어려운 단어, 표현 등을 공부한 뒤에 영어 자막으로 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국어 자막은 지원하지 않는다) 대략 1시간 공부 후 40분 정도 드라마를 보는데, 굉장히 보람차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정치, 행정, 역사, 법률 등을 배우면서 공무원으로서의 초심도 되새기게 된다.
먹는 것도 그렇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장점이라면 애틀랜타에 가까이 있어 한인 마트가 차로 50분 거리라는 게 꼽힌다. 남들은 일주일마다 한인 마트에 가서 한식 재료를 사 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정착 초창기에 몇 번 간 뒤로는 잘 가지 않는다. 대신 코스트코, 트레이더 조, 월마트 등 미국 마트에 가서 식재료와 향신료 등을 사서 최대한 이국적인 요리를 해 먹으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해볼 엄두가 안 나던 양고기, 일본 수프 카레, 뵈프 부르기뇽 등을 해왔다. 물론 한식도 한다(아내의 요청에 추가했다). 아보카도, 파인애플, 바나나 등 과일도 한국보다 신선하고 더 맛있는 느낌이라 더 자주 사 먹게 되었다. 심지어 10불 이하의 와인도 워낙 종류가 다양하게 있어 다 마셔보지 못한 채 귀국하지 않을까 싶다.
아참, 요즘은 2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기 시작했다. 영어 소설책은 다 읽을 자신이 없어서 만화책 코너에서 빌리고 있다. Evil Eyes Sea라는 책이 새 책 같아 보여서 읽어봤는데, 90년대 튀르키예의 사회, 문화, 정치 등을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통해 알 수 있어서 알찬 경험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번 봄방학 때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 캐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너무 자랑처럼 들릴까 봐 독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시간은 동일하게 주어지고 공평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내가 왜 굳이 미국에 와서 이렇게 아등바등거리며 알차게 살려고 노력하는지 생각해 봤다. 미국에서의 삶을 더 귀중하게 여겨서 그랬나?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리적 차이 때문에 내 삶의 중요도가 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의 일상을 너무 당연하게 주어진 걸로, 너무 가볍고 쉽게 생각한 내 인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직 미국 생활을 한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초보 '미린이'(라는 말은 없다)이지만, 이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열심히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