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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14. 2022

나 이제 구내식당 안 가!

신입일 때 우리 과 점심 당번은 저였습니다. 매일 과에서 점심 약속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갈 식당을 예약하는 것이 저의 일이었습니다. 특히 과장님이 끼시게 되면 식당을 정하는 데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대충 아무 식당이나 갈 수는 없으니깐요.


하지만 저는 먹는 데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구내식당으로 갔습니다. 과장님도 처음에는 구내식당도 괜찮다고 하셨죠. 그 말씀만 믿고 계속 구내식당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오늘도 구내식당 가겠다는 저의 말에 갑자기 소리를 크게 지르셨습니다.


"이 사무관, 보자 보자 하니깐 너무한 것 아니야? 내가 신입일 때는 과장님 점심 뭐 드시는지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 나 이제 구내식당 안 갈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나중에 선배 사무관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언젠가 과장님이 폭발할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그동안 점심 메뉴에 불평 한 번 없으셨던 과장님께서 저렇게까지 했겠냐며 앞으로 신경을 좀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청사 근처 맛집 리스트를 주시더라고요.


저도 너무 심했던 것 같았기에 열심히 식당을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과장님이랑 먹는 날마다 선배들과 점심 약속이 계속 생겼습니다. 과에서 점심을 같이 하지 못했죠. 나중에 과장님께서 저에게 그러시더라고요.


" 사무관, 내가   뭐라   때문에 나랑 점심 먹는 거 피하려고 약속을 그렇게 잡는 거야?"


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우연히 과장님과 약속이 겹친 것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제 진심이 잘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과장님과 점심을 여러 번 같이 하게 되면서야 오해가 풀렸습니다.


누구든 매일 점심에 식당 잡는 건 힘든 일입니다. 저는 과장이 되더라도 구내식당에 자주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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