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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15. 2022

밥 굶고 일하기

앞으로 할 이야기는 실제 겪은 일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공직 사회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알려드립니다.


#1

과장님께서 오전에 실장님 보고를 들어가셨는데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저희는 과장님을 혼자 두고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없어서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에 과장님께서 상기된 얼굴로 나오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실장님이 점심도 먹지 말고 이거 고치래요. 난 지시받은 대로 점심 안 먹을 테니 저 빼고 다녀오세요."


#2

옆 과의 과장님은 점심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점심때가 다가오면 과 회의를 시작하셨죠. 그 과에 사무관들은 어쩔 수 없이 점심도 못 먹고 회의를 한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저도 그 과 사무관들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가 한참을 기다렸던 적도 많았습니다. 소문에 그 과장님은 점심도 안 먹고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신다더라고요.


#3

하급자에게 정말 인자하신 과장님이 계셨습니다. 업무 때문에 직원들에게 푸시하지 않으셨죠. 한 번은 저녁 시간이 다 되었지만 일이 끝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빨리 국장님께 보완 보고를 드려야 했기에 저는 정신없이 컴퓨터 타자를 치고 있었죠. 과장님께서는 바쁘게 일하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저녁이나 먹자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퇴근도 못하고 일하는 게 짜증이 나서 (그러면 안 됐지만) 과장님께 확 질렀습니다.


"지금 저녁 먹을 상황이 아니거든요. 빨리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과장님께서 너무 좋은 분이셔서 별말씀을 안 하셨지만, 지금도 되새겨보면 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너무 일만 중시하시는 분들을 보고 배워서 그런지 저도 그랬던 것 같았거든요. 과장님,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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