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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17. 2022

주무관과 기싸움 2

출근 첫날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게 된 주무관님이 대뜸 저에게 오늘 국장님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방금 여기 와서 무슨 업무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제가 보고를 해야 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주무관님은 그렇지 않다며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국장님께 직접 보고를 드릴 테니 사무관님은 그냥 옆에 앉아 계세요. 자료는 미리 드릴게요."


이미 전임자가 보고 준비를 다 마쳐놨던 모양입니다. 저는 다행이다라며 속으로 안심하고 주무관님이 주신 자료를 읽어봤습니다. 이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대출 금리를 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침 오타가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1.5%에서 1.0%로 금리를 내리는 것을 '0.5% p' 인하가 아니라 '0.5%' 인하로 적어놨더라고요. 저는 PSAT 자료해석 과목을 공부한 보람이 있구나 하면서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주무관님은 이 보고서가 이미 과장님까지 검토가 끝난 것이니 안 고쳤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내용을 바꾸는 게 아니라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의 차이로 인한 오타를 수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무관님 입장에서는 황당하셨을 것 같습니다. 수습 사무관이 오자마자 전임 사무관이 과장님 보고까지 다 끝내 놓은 것을 틀렸다며 고치겠다고 하니깐요.


그래도 명백한 오탈자라는 것을 제가 계속 설득시켰고 결국 수정해서 결재를 진행했습니다. 아침에는 처음 보는 주무관님이랑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결심하면서 출근했었는데 첫날부터 틀어진 것 같았습니다. 주무관님은 아마도 엄청 고집이 센 사무관이 왔다고, 앞으로 같이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저 엄청 고집이 센 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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