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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13. 2022

보고서는 쉬운 말로

지방 관서에서 오신 주무관님들과 일을 할 때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저보다 한참 젊으신데도 공문이나 메일을 쓰실 때 무척 어렵게 쓰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파란색 글씨'를 청서(靑書)라고 표현하는 것이죠. 한 번은 왜 그렇게 어렵게 쓰시는지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처음에 공문 쓰는 법을 배울 때 이러한 단어를 써야 한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저도 공무원 면접을 준비할 때 공무원이 쓴 보고서를 뒤져서 제고(提高), 저하(低下), 모색(摸索)과 같이 자주 쓰이는 표현을 익혔습니다. 업무를 시작했을 때도 평소엔 볼 수 없지만 공직에서 흔히 볼 수 단어를 많이 썼습니다. 공무원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보고서를 잘 쓰신다고 소문난 과장님을 만나면서 깨졌습니다.


그 과장님께서는 보고서를 쓸 때 쉬운 말로 쓰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내용이 어려울진 몰라도 보고서에서는 쉬운 단어와 간결한 문장을 쓰도록요. 무슨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읽는 사람이 이해가 잘 되도록 쓰면 된다는 것이죠. 심지어 보고서에 화살표를 쓰시기도 하셨습니다.


연수원 시절에 저희 조가 썼던 보고서의 일부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땐 나름 열심히 쓴 건데 지금 보니 좀 부끄럽네요. 일단 제 수준에서 다듬어보았습니다. 한자 사용을 줄이고,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표현을 뺐습니다. 당연히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현장에서 연구개발경험을 축적해온 전문가를 ㅇㅇ기업에 효과적으로 유입하여 연구인력 부족현상을 완화하고 ㅇㅇ기업의 연구개발역량 강화
→ ㅇㅇ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하여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채용을 지원


보고서의 목적은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빠른 시간 안에 상대를 이해시키거나 정책결정을 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상대를 쉽게 이해시켜야 하는 게 중요하죠. 제가 유식하다거나 제 문체가 화려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보고서를 쓸 땐 건조하면서도 쉬운 말로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주무관님들은 보고서를 쓸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무관보다 공문이나 메일을 더 자주 씁니다. 저도 주무관님들의 메일을 많이 받는데, 메일만 보고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길 정도로 글 쓰는 게 중요합니다. 간부들은 사무관의 보고서를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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