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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랩 Dec 15. 2019

뉴욕엄마의 패션센스는 제로

어느 주니어레벨 육아맘의 이 시간. 

"리넷 엄마가 아니라 너의 인생을 살아!!!" 카카오보이스 콜로 서울의 베프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리넷 드레스는 바로바로 골라서 사재기가 되는데 내 옷은 도통 못 고르고 사기가 주저된다는 내 말이 끝나기도전에 말이다. 패션을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 리넷의 베이비 블루 벨벳 드레스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사진을 보내주니 엄마가 대뜸 물어보신다. "너는 뭐 입었어?" 

리넷이 세돌되기 세달 전. 다름이 아닌 나의 스타일의 정체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거다. 임신했을때는 거의 블랙으로 입거나 있던 옷중에서 대충 입다가 잘 나가는 내 베프가 일부러 만삭인 나를 보러 뉴욕출장을 감행 했을때 임산부용 청바지와 롱부츠, 가죽자켓으로 멋을 냈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지금까지 별다른 특징없이 청바지에 니트나 실크 셔츠(일할때 입던)에 스니커즈가 교복이 되고 있다. 난 몰랐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가 결정 (Decision Making)이었다. 그것도 쇼핑. 아이는 한번도 안걸어 본 인생을 새로운 옷을 입고 가는 것이다. 그것도 매해 매달 업데이트해줘야한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브룩클린의 세딸의 엄마인 남편의 사촌이 보내준 다 떨어지다시피한 옷들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입혔었다. 선택하기 싫고 쇼핑하는 노동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패션에 예민하신 울엄마가 오셔서 검열을 시작했고 좀 너무하다 싶은 옷은 바로 버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와 함께 시작된 것은 바로 쇼핑이었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신발과 옷과 모든것이 새롭게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다고 했던가? 나는 갓난아기때 도대체 어떻게 입고 먹었을까? 안그래도 소심하고 예민한 쇼핑을 하는 나는 체크아웃의 결정을 하기까지 어마어마한 고심을 하게되었다. 리넷의 같은반 딸부자집 샬롯의 엄마 제니는 속전속결로 깜짝 놀랄 정도이다. 그녀는 땡스기빙 때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 해놓고 가을부터 크리스마스때 입힐 딸들을 위한 드레스를 물색해간다. 내가 드레스 3벌을 익스프레스 딜리버리로 웃돈을 주고 콘서트 이틀 전에 받아볼 때 제니는 이미 드레스를 세트로 쫙 빼입은 딸들과 찍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여유있게 건네주었다. 육아가 하나의 회사 경력이라면 제니는 시니어파트너 정도 되겠다며 우스갯 소리를 한적이 있다. 


샤워를 할때 머리에는 체크리스트로 가득하다. 뜨거운 물로 지지는 동안 리넷을 향한 모든 항목을 만들어간다. 거기에다가 이제는 길어진 리넷의 밤잠의 시간에 해야될 나의 항목이 더해진다. 이번 크리스마스때는 아이만 공주처럼 예쁘게 하지말고 나도 멋도 조금 부리고, 더 중요한것은 꼭 이 시간에 앉아서 글을 쓰기로 정했다. 


리넷이 태어나기 전 언니와 엄마와 함께 했던 보스턴 가족여행중 찰스 강변을 거닐다가 피천득님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 이야기가 나왔었다. 옷은 잘 못 고를지 모르지만 지금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 대해선 나도 구구절절히 쓸 자신은 있더라. 아니 그런 마음은 있더라. 엄마이기 전에 나를 찾는다라는 광고성있는 문구보다. 엄마가되고 찾아진 나를 나는 참 좋아한다. 물끄럼히 리넷을 바라보다가 말한다. 리넷 너는 누구니. 엄마는 너 사랑해. 

나를 보고 리넷이 그런다. 나두 너 사랑해.. 이런... 존대말부터 가르쳐야겠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 - 피천득

나는 우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지금 돈으로 한  5만 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면은 그 돈으로 청량리 위생 병원에 낡은 몸을 입원시키고 싶다. 나는 깨끗한 침대에 누웠다가 하루에 한두 번씩 덥고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 제 생일날 사 주지 못한 비로드 바지를 사 주고, 아내에게는 비하이브 털실 한 폰드 반을 사 주고 싶다. 그리고 내 것으로 점잖고 산뜻한 넥타이를 몇 개 사고 싶다. 돈이 없어서 적조하여진 친구들을 우리 집에 청해 오고 싶다. 아내는 신이 나서 도마질을 할 것이다. 나는 5만 원,  아니 10만 원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는 생활을 가장 사랑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기운을 다 팔아 버리지 않고,  나의 마지막 십분의 일이라도 남겨서 자유와 한가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

나는 잔디를 밟기를 좋아한다. 젖은 시세를 밟기 좋아한다. 고무창 댄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기를 좋아한다. 아가의 머리칼을 만지기 좋아한다.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보드랍고 고운 화롯불 재를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남의 아내의 수달피 목도리를 만져 보기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좀 미안한 생각을 한다.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한다. 그는 웃는 아름다운 얼굴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수수한 얼굴이 웃는 것도 좋아한다.  서영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바라보고 웃는 얼굴도 좋아한다. 나 아는 여인들이 인사 대신으로 웃는 웃음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아름다운 빛을 사랑한다. 골짜기마다 단풍이 찬란한 만폭동 앞을 바라보면 걸음이 급하여 지고 뒤를 돌아다보면 더 좋은 단풍을 두고 가는 것 같아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예전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주신 색종이 같은 빨간색,  보라,  자주,  초록,  이런 황홀한 색깔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우리나라 가을 하늘을 사랑한다.  나는 진주빛,  비둘기빛을 좋아한다. 나는 오래된 가구의 마호가니 빛을 좋아한다.  늙어 가는 학자의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좋아한다.   

나는 이른 아침 종달새 소리를 좋아하며,  꾀꼬리 소리를 반가워하며,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즐긴다.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를 좋아하며,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나는 골목을 지날 때에 발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있게 하는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젊은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 없는 방 안에서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의 말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비 오는 날 저녁 때 뒷골목 선술집에서 풍기는 불고기 냄새를 좋아한다. 새로운 양서(洋書) 냄새,  털옷 냄새를 좋아한다. 커피 끓이는 냄새,  라일락 짙은 냄새, 국화, 수선화, 소나무의 향기를 좋아한다. 봄 흙냄새를 좋아한다.   

나는 사과를 좋아하고 호도와 잣과 꿀을 좋아하고, 친구와 향기로운 차 마시기를 좋아한다. 군밤을 외투 호주머니에다 넣고 길을 걸으면서 먹기를 좋아하고, 찰스 강변을 걸으면서 핥던 콘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나는 아홉 평 건물에 땅이 50평이나 되는 나의 집을 좋아한다. 재목을 쓰지 못하고 흙으로 지은 집이지만 내 집이니까 좋아한다.  화초를 심을 뜰이 있고 집 내놓으라는 말을 아니 들을 터이니 좋다.  내 책들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을 수 있고 앞으로 오랫동안 이 집에서 살면 집을 몰라서 놀러 오지 못할 친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삼일절이나 광복절날 아침에는 실크 헷(Silk Hat)을 쓰고 모닝 코트를 입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여름이면 베 고의 적삼을 입고 농립을 쓰고 짚신을 신고 산길을 가기 좋아한다.

나는 신발을 좋아한다.  태사신,  이름 쓴 까만 운동화,  깨끗하게 씻어 논 파란 고무신,  흙이 악간 묻은 탄탄히 삼은 짚신,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은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 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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