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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랩 Dec 11. 2020

코로나 락다운
뉴욕에서 아이와의 추억만들기.

아이는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춘다. 그 안에 창조자의 숨결이 있다.

교육에 관심이 지극한 워킹맘 친구와 책 강연회를 간적이있다. 뉴욕 어퍼이스트에서 살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 일본에 건너가 공립학교 시스템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경험한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작가의 토크가 끝나고 Q&A 시간이 되었다. 소위 놀이중심 학교에 Play based school 아이를 보내고있는 부모의 걱정이아직도 인상에 남는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려 놀이중심 학교에 보냈다가 유치원 시험에 떨어지게된 웃지 못할 사연이었다. 놀이 중심, 자연중심 유치원부터 몬테소리나 레지오에밀리에와 같은 육아 접근법이 이곳 뉴욕에도 넘쳐나고 있다. 


마치 완성이 안된 제품에 예쁜 레이블를 붙이는것처럼 보이기까지하는 접근 육아방법들.  

내게는 그 모든 육아의 철학들이 무의미할 정도였다. 아이가 만 세살이 되기전까지는 기본적인 눈에 보일만한 차이와 수준으로 아이를 도와주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아이와 나는 뉴욕의 아파트에서 두달반 정도를 디스턴스 러닝이라는 온라인 클래스를 하게되었는데, 일주일씩 커리큘럼과 루틴(서클타임)부터 그 주간 할 아트, Math, writing 까지 모든것에 있어서 엄마인 내가 리뷰를 하고 준비를 해야했다. 

가령 이번 봄학기는 씨앗으로 시작해서 꽃, 나무, 가든까지 모든 일련의 과정을 배우는 커리큘럼이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일주일의 아젠다가 나오고 아이가 잠들고 나면 밤새 프린트를 하거나 재료를 준비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코로나가 극성인 시즌이어서 남편이 마스크를 쓰고 델리에 가서 꽃을 사오거나 야채들을 사왔고 계란박스부터 모든 재활용품들을 소중하게 모셔놨다. 언제라도 아트 재료로 쓰여질지 몰라서다. 그당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추구하는 철학이 바로 레지오 에밀리아였다. 자연에 대한 시를 읽어주거나, 블루베리, 라즈베리 모든 베리들을 잔뜩 볼에 담아 촉감을 느끼게 한다거나 나뭇잎이나 가지로 그림을 그리는등 모든 형태의 자연에서 나오는 것들이 영감이 되는 이 창작 활동의 주체는 바로 아이 자신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절대 부모가 옆에서 지도하거나 작품을 만져주지 않는거다. 아이의 수업을 사진찍어서 제출할때 여기 조금만 손대면 정말 그럴듯한 작품이 되겠는데 하는 여운이 있었지만 아이가 한 그대로 제출했다. 그리고 노트에 세밀하게 아이가 추구하고자 했던것이 무엇이었는지 써넣었다. 

아이의 작품은 정말 형태가 없는 난해한 추상주의 그림이 되었지만 형태가 없었기에 아이는 그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피거나 사고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어느날, 리네뜨는 갑자기 거대한 사람을 만들고 심장을 넣는다거나 Teeth map이라며 입안의 모든 치아를 그려넣기도했다. 재료와 자연과의 관계. 시와 아트 그리고 놀이와 운동신경까지 연결되는 주제에 깊이 들어가는 어프로치에 반해 밤마다 레지오 에밀리아 사이트나 다른 육아 철학들을 보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레지오 에밀리아의 중요한 부분인 도큐멘팅하는 부분은 교사와 부모가 관찰자가 되어서 아이의 그림과 생각에 대해 빼먹지 않고 적는 일이다. 아이의 창작활동 모습을 사진 찍고 그리고 이게 뭐냐고 물어보고 적어내려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이가 가지고 있는 표현의 무궁무진함에 반하기도했고 그 순간에 눈물이 찔끔 나오기까지 감동적이기도했다. 선 하나 모양하나에 다 의미있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레지오 에밀리아에서는 아이에게 100가지의 언어100 languages 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는 말하고 있다. 몸짓으로,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아이에게 언어는 끝도 없다고 말이다.

어떠한 모양을 만들어주거나, 마지막 완성단계에서 몇가지의 터치를 통해 그럴싸한 작품이 나오게 하지 않는다. 만 3살반에서 아이는 집에 흙으로 그린 그림이나, 메탈릭 물감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그린 그림을 들고왔다. 나뭇가지들과 실을 연결해 잎을 달아서 모빌을 만들거나 전혀 쨍한 느낌없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너덜너덜한 작업들을 가져오고 그 아이를 위해 문앞에 갤러리를 만들어 주었다. 

     

육아를 하면서 바쁘고 피곤한 마음에 잠깐이라도 탈출하고자 도망가듯이 셀폰을 스크롤하고 있는 나의 모습. 육아에 찌든 풍요롭지않은 나의 메마른 정서로는 절대 창조적 아이와 함께 눈을 맞출 수 없었구나. 그래서 재앙이라 할 수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24시간 7일 동안 아이와 함께 모든 순간을 같이 하는 이 시간을 주었음에 감사가 되었다. 나는 한번이라도 1:1로 눈을 제대로 맞춘 적 있을까. 아이의 발달 상태에 맞춰 조금이라도 더 집어 넣기위해 충분한 자극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목아프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플래쉬카드를 들이댄적은 없는지 되돌아본다. 


유난히 파란 하늘 이었다. 소파에 드러누워 리네뜨 엄마 배타고 눞자 하니 성큼 걸어와 쿵하고 내 배위에 올라온다. 하늘을 본다. 그러면서 말한다. 엄마는 너무 감사해요. 너가 있어서.  You are so special. I love you very much!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도 엄마 러브해. 너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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