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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May 10. 2020

나는 '시작'이 무섭다.

시작이 무서운 사람들에게

노을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요


  나는 유독 시작, 처음을 무서워했다. 익숙한 환경에 벗어나 새로운 것들에 둘러싸이는 건 언제나 무서웠다. 내 기억의 가장 첫 시작은 초등학교 입학이었다. 8살 나는 한동안 학교 가는 게 무서웠다. 아니, 겉으로는 매우 잘 적응한 듯이 보였겠지만 8살 그 당시 마음은 매일이 무서웠다. 엄마 손을 놓고 교문으로 들어가는 나는 마치 괴물을 물리치며 이리저리 불꽃을 피하는 게임 주인공이 된 듯했다.


  그렇게 6년을 열심히 다녔더니 또 중학교에 들어가야 했고, 3년이 지나니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대학교에도 입학했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는 무서운 시작이 없을 줄 알았다. 이제는 낯선 곳에 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지긋지긋했던 자기소개도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아니, 착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 새로운 학교에 가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쉬운 처음이었다.


  20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 낯선 장소에서 아주 익숙하게 일을 해내야 했다. 그곳은 사회였다. 낯설어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 곳이다. 8살 때도 그랬지만 겉으로는 매우 잘 적응한 듯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잘 웃고 일도 꽤 잘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연기를 하며 살았다. 그렇게 연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는 손잡이를 잡을 힘도 없고 누군가 날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졌다. 내겐 그저 두 다리를 땅에 붙일 힘만 남아 있었다.


  심지어 나는 이런 일도 있었다.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려 핸드폰으로 길을 찾고 있었다. 굉장히 지친 상태였기에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노선을 찾았다. 그러나 타보지 않은 노선의 버스를 타야 했다.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낯선 버스를 타고 정류장을 계속 확인하며 집으로 가기엔 두려워 결국 익숙한 버스를 선택해 빙빙 돌아 집에 왔었다.


  처음을 두려워했던 나는 시간이 지나 25살이 되었어도 여전하다. 시작을 설렘으로 즐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나는 작아질 뿐이다. 나는 이런 내가 싫어 고치고 싶었다. 왜 나는 시작을 즐기지 못하는지, 왜 자꾸 익숙함으로 돌아가려 하는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내 두려움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처음이니까. 그냥 낯서니까. 그냥 익숙함이 좋으니까.


  답을 찾지 못했기에 고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당연한 게 아닐까. 과연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 새로운 일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시작의 두려움’은 있다. 그런 사람과 내가 다른 건 오직 하나다. 그들은 두려움을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설렘으로 즐기지만 난 아니라는 것. 그럼 나도 그들처럼 두려움을 두근거림으로 즐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난 결단코 아니라 답한다. 나는 절대 시작을 설렘으로 즐기지 못하고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 그게 나다. 굳이 바꾸고 싶지 않다. 즐기는 이들에게 비교하며 작아지기엔 나는 내가 소중하다. 나는 시작이 무섭고 새로운 일이 싫다.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이야기를 나누고 익숙한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즐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만 보여주기엔 나는 너무 소중하다. 그런 내게 인생이라는 여행 도중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고 더 많은 것을 경험시키고 싶다. 익숙함에 머물며 같은 곳을 맴돌기엔 나는 소중하다. 그러려면 많은 시작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처음'이라는 단단하고 무서워 보이는 벽을 만나면 스스로에게 얘기한다.


  ‘괜찮아. 지금 무서운 건 당연한 거야. 작아지지 말자. 나는 소중하니까, 작은 곳에 있기엔 아까우니까 이 벽도 한 번 넘어보는 거야. 이 벽을 넘고 내 세상으로 만들면 되는 거야. 곧 익숙해질 거야.’


  나처럼 ‘시작’이 두려운 이들이 분명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들에게 굳이 ‘시작을 즐기세요. 그 두려움을 즐겨요.’라며 강요하고 싶지 않다. 무서운데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으로도 발을 동동거리게 되느데  즐겨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면, 어우 상상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진다. 즐기지 못해도 괜찮다. 두려움에 지금 당장은 발을 머뭇거려도 괜찮다. 가끔은 벽을 넘기 무서워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무섭고 두렵죠? 당연해요. 나도 이렇게 당신에게 말하는 순간조차 시작이 무서워요. 근데 두려움에 겁먹어 벽 너머의 세상을 보지 못하는 건,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잖아요. 나는 너무 소중하고 가능성이 넘치는데 이런 내게 저 너머의 세상을 선물하지 못하는 건 너무 마음이 아프잖아요. 무서워해도 좋아요. 즐기지 못해도 좋아요. 그저 그냥 두려움에 돌아서지 말아 줘요. 다시 익숙함으로 돌아가더라도 또 벽 앞에 찾아와 줘요. 그리고 두 눈 꼭 감고 한 번 넘어보는 거예요. 우리는 소중하잖아요. 분명 우리는 잘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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