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적 위버맨시인 제인의 꿈속 세상에서 허무한 아름다움을 느끼다.
* 영화의 결말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다면 영화를 먼저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다만, 곳곳에 명대사가 많기 때문에 직접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지난번 회식 도중에 최근 개봉한 <만약에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이 영화를 추천받게 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구교환'의 연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와 구교환 연기 잘한다' 정도의 칭찬이 아니라 실제로 '제인'이라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제인은 지금도 어느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꿈(Dream)'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밤에 잘 때 꾸는 꿈'이라는 뜻이 있고, 평소에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도 꿈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꿈'이라는 단어는 동일하게 중의적인 두 가지 의미 모두로 쓰인다. 이 영화는 주인공 '소현'이 우리에게 쓴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복잡한 플롯은 소현이 꾸는 꿈과 평소 꾸고 있는 꿈을 두 가지 서로 다른 삶의 모습으로서 보여주고 있다.
제인(엄마) 패밀리
먼저, 정호 오빠에게 버려져 홀로 남겨진 소현이 손목을 그은 직후에 제인이 찾아와 소현을 거둔다. 제인은 평소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모으고, 줍는다. 그래서 사회에서 쓸데없어 보이는 가출 청소년들을 모아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제인 패밀리 안에서 소현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다는 꿈과 정호 오빠를 찾고 싶다는 꿈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패밀리의 엄마인 제인이 자식들에게 케이크를 나누어 주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5명이 각각 케이크 한 조각씩 받고, 3조각의 케이크가 남았다.
"이것 봐봐. 케익이 몇 조각 남았니, 세 조각 남았지? 너네가 앞으로 살면서 말이야,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넷 중 하나라도 케익을 포기하게 만들어선 안 되는 거야. 차라리 셋 다 안 먹고 말아야지, 그치?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
제인의 이 말은 잔인하게도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혼자 행복한 길보다는 모두 불행하더라도 서로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제인과의 삶은 꿈속과 같이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미러볼의 불빛, 다가오는 달빛은 꿈속과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줌과 동시에 소현이 꾸고 있는 꿈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꿈일지라도 아침이 되면 깨어나야 하는 것처럼 소현은 종호 오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만두자고 제인에게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꿈)을 포기한 제인은 결국 목숨을 끊게 되고, 소현과 아이들은 제인을 붉은 담요로 소중하게 싸서 땅에 묻는다. 그렇게, 제인의 패밀리가 해체된다.
두 번째로 소현은 병욱이 아빠로 있는 가출팸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보여준다. 실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지, 이 또한 소현이 들려주는 거짓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전에 제인 패밀리에서의 생활과는 많은 부분에서 서로 대비된다. 그곳에서 소현은 패밀리 안에 있지만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 이곳뿐이기 때문에 붙어 있을 뿐이다. 그런 패밀리에 '지수'라는 인물이 들어오게 되고, 지수는 병욱 팸에서 유일하게 소현과 가까워지는 인물이다. 소현은 지수를 자신의 언니처럼 나아가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수를 통해서 나머지 대포와 쫑구와도 친해지고, 이들은 앞선 제인 패밀리에서도 가족으로 등장한다. 소현에게는 이들만이 자신의 가족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자신을 챙겨주던 지수는 제인과도 겹쳐지는 인물이다. 즉, 제인 패밀리와 병욱 패밀리에서 소현이 처한 상황은 서로 묘하게 겹쳐진다.
병욱 패밀리는 더욱 현실처럼 보이고, 더욱 잔인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카메라 자체를 핸드헬드로 찍어서 화면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화면의 구석에 인물을 배치하여 세상 속에서 무력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소현과 지수는 그런 살기 버거운 세상 속에서 각자의 꿈을 꾸게 된다. 지수는 병욱 패밀리를 나가 유일한 혈육인 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고, 소현도 역시 패밀리를 나가 지수의 패밀리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지수의 식객이 아닌 지수와 가족이 되어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꿈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꿈이 좌절되었을 때 병욱의 패밀리 또한 해체된다.
즉, 두 패밀리에서의 생활 모두에서 소현은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종국엔 두 패밀리 모두 해체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꿈을 꾼다. 보통은 행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현실의 외로운 삶과 불행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총 2번을 보았는데, 플롯이 쉽지는 않다. 이 영화에 대해 쓴 글들을 몇 개 읽어보았는데 실제 일어난 이야기와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나누고, 실제 있었던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렇게 영화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 영화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크게 보면 제인과 함께 했던 1부의 이야기, 병욱팸에 속해서 생활했던 2부의 이야기, 마지막 뉴월드에서 제인의 무대를 보게 되는 3부의 이야기로 나뉜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지도 않고,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는 마지막 무대에서 제인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모든 이야기는 꿈이 그렇듯 현실성이 없고, 개연성도 없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소현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으로 위로받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제인은 트랜스젠더이다. 하지만, 영화가 성소수자를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제인은 자신이 거짓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은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남들은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제인의 말을 거짓말로 치부해 버린다. 그래서, 모두가 제인의 곁을 떠나갔다. 이러한 모습은 주인공인 소현의 상황도 동일하다. 소현도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제인은 꿈 자체를 의미하고, 꿈은 현실이 아닌 허구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제인의 모습은 소현의 꿈 그 자체이고, 그 꿈은 현실이 아닌 꿈 속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볼 때 가장 대비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병욱 패밀리와 제인 패밀리에서 소현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이다. 병욱 패밀리는 지수가 죽은 뒤에 거실에 앉아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눈다. 주위는 미러볼 불빛이 비추고 있고, 병욱은 자신이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성매매를 위해 자신을 집 밖으로 밀어낸 이야기를 한다. 그때, 주위의 다른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왜 하냐며 이야기를 끊고, 소현이 하는 정호 오빠에 대한 이야기도 끊어버린다. 반면, 제인 패밀리의 4명의 가출팸은 모여서 각각 자신들이 보았던 거북이, 고양이, 비둘기 사체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함에도 서로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런 불행한 상황의 사람들이 연대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진다.
제인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앞으로도 불행하고 외로운 삶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소현이 바라는 꿈도 그러한 불행이 없어지게 해 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영화 속 제인은 나도 불행하고 너도 불행하지만 우리로서 가끔 만나 즐거우면 그런 삶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하다. 심지어 그것이 실제가 아닌 꿈과 같이 허구일지라도 내가 그렇게 믿는다면 괜찮을 것 같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진실하지 않았어요. 제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제 노래는 거짓 역사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죠. 그렇게 제 존재는 언제나 거짓이었습니다. 입만 열면 거짓의 구취가 난다고 손가락질받았죠. 전 어찌할 줄 몰랐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 곁에 머물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죠. 특히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제 곁을 떠났어요. 그들 중 몇 명은 제게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넌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야. 왜냐면 넌 사랑받고 싶어서 누군갈 사랑하거든. 그렇게 저는 여전히 혼자인 채로 살고 있습니다. 제 진심이 언젠가는 전달될 거라고 믿으면서요. 물론 이 외로운 삶은 쉽게 바뀌지 않겠죠. 불행도 함께 영원히 지속되겠죠. 뭐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처럼 이렇게 여러분들이랑 즐거운 날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어쩌다 이렇게 한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 월드에서!
제인 대사 中
그때는 몰랐지만 이 편지를 쓰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제인 언니는 저를 위해 용기를 해서 노래했다는 걸. 그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해도. 그것만은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것도요.
소현 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