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심층리뷰/결말포함] 그을린 사랑(2010)

한 가족에게 일어난 처참한 비극

by 뇨리

* 영화가 충격적인 반전 영화이고,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결말 포함)


나왈 마르완의 공증인인 '장 르벨'은 그녀의 자식들인 쌍둥이들의 입회 하에 그녀의 유언을 전한다. 하지만, 나왈의 유언은 어딘가 이상하다. "관에 넣지 말고 맨몸으로 묻어주세요. 기도도 하지 말고 시신은 엎어서 세상을 등지게 해주세요. 묘비를 세우지 말고 어디에도 이름을 새기지 마세요." 이후, 장 르벨은 쌍둥이들에게 각각 봉인된 편지를 건네며 딸인 잔느에게는 쌍둥이의 아버지를 찾아 봉투를 건네달라고 부탁하고, 아들인 시몽에게는 쌍둥이의 형을 찾아 봉투를 전달하라는 이상한 유언을 남긴다. 편지를 다 전달한 이후에는 묘비를 세우고, 태양 아래 나왈의 이름을 새겨도 좋다는 내용도 덧붙인다.


시몽은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다 끝났고, 자신은 이미 마음이 편해졌으니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하지 않고, 평범한 장례를 치르겠다고 어머니의 유언을 거부한다. 하지만, 수학자였던 잔느는 지도 교수에게 조언을 얻어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수학자로서 어머니의 과거를 찾아 떠난다.


# 잔느의 여정

잔느는 어머니 나왈의 대학이 있는 다레시로 향한다. 이는 딸인 잔느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과거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과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난민이었던 무슬림인 와합이라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 임신한다. 와합은 나왈의 오빠들이 죽였지만, 아들은 나왈의 할머니의 도움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태어난 아기는 발뒤꿈치에 3개의 점이 찍힌 채 남부 기독교인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나왈은 마음속으로 언젠가 꼭 아들을 다시 찾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왈은 이슬람 세력과 사랑에 빠져 집안의 치부가 되었기 때문에 가족을 떠나 삼촌의 집으로 가서 대학을 다닌다. 그러다 레바논 내전이 터지게 되고, 남부의 기독교 마을이 공격을 당했다는 말에 나왈은 고아원으로 향하지만 그곳은 이미 전날 폭격을 당해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 있던 아이들의 행방은 모르지만 이슬람 세력이 '다레사'로 데려갔을지도 모르는 생각에 그녀는 다레사로 향한다. 가던 도중 이슬람 버스를 얻어 타게 되고, 도중에 기독교 민병대가 버스를 습격한다. 나왈은 자신은 기독교인이라며 버스 밖으로 나오게 되고, 나오면서 살아남은 아이를 자신의 딸이라고 우기지만 민병대는 버스를 태워버리고, 아이도 사살한다. 눈앞에서 죽은 아이와 불타는 버스 앞에서 나왈은 한참을 넋이 나가 앉아 있는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끊어진 듯하다.

나왈은 데레사에 도착해 피웅덩이 속에서 아들을 찾았지만 아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점차 민족주의자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샴세딘'이 이끄는 이슬람 테러단체에 가담하게 되고, 과외 선생으로 위장해 기독교 민병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 이 일로 나왈은 남부의 감옥 '크파르 리야트'에 15년 동안 갇히게 된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지만 나왈은 고문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항상 노래를 불렀다. 결국 고문기술자인 '아부 타렉'이라는 인물이 파견되어 나왈을 무너뜨리려고 그녀를 지속적으로 강간한다. 결국 나왈은 임신을 했고, 감옥 속에서 아이를 낳게 된다.


# 시몽의 여정

사건의 전말을 들은 잔느를 진정시키려 시몽이 찾아오고, 쌍둥이는 감옥에서 나왈이 아들을 낳을 때 도왔다는 간호사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둘은 자신들이 그 감옥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몽이 자신의 형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시몽과 동행한 장 르벨의 도움으로 그는 과거 고아원으로 보내진 형의 이름이 '니하드'라는 것을 알아낸다. 이어진 여정에서 시몽은 이슬람 군 지도자인 샴세딘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충격적인 진실을 듣게 된다.


샴세딘은 과거 기독교 고아원을 습격한 이후 그곳의 아이들을 데려와 훈련시켰다. 니하드는 그중에서 뛰어난 소질이 있었고, 뛰어난 저격수가 되었다. 전쟁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다니던 그 아이는 점점 전쟁에 미쳐버리게 된다. 누구든 가리지 않고 쏴 죽이던 니하드는 결국 적에게 생포당하지만 적들은 니하드를 죽이지 않고, 훈련시켜 크파르 리야트 감옥으로 보냈다. '아부 타렉'이라는 고문 기술자로서.


이후 자신을 찾아온 잔느에게 시몽은 묻는다.

"1 더하기 1은 2잖아. 1이 될 수는 없잖아. 잔느, 1 더하기 1이 1일 수도 있을까?"

잠시 생각하던 잔느는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한다.


과거 나왈이 딸 잔느와 수영장을 찾았던 날. 수영을 하던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한 남자의 발 뒤꿈치의 3개의 점을 발견한다. 아들을 발견해 설레는 마음으로 그 남자에게 다가가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왈의 눈앞에는 과거 자신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아부 타렉'이 서 있었다. 그는 니하드 드메이이자 아부 타렉이었다.


# 나왈의 편지

그는 현재 '니하드 하르마니'라는 이름으로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쌍둥이는 형제이자 아버지인 니하드를 찾아가 나왈의 편지를 전한다. 니하드는 그들이 건넨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한다.


편지를 쓰려니 떨리네. 나는 당신을 알아봤지만 당신은 날 알아보지 못했지. 정말 놀라운 기적이야. 나는 당신의 72번 수감자야. 우리의 아이들이 이 편지를 전해줄 거야. 당신은 그 애들을 알아보지 못하겠지. 아주 예쁜 아이들이니까. 하지만 그 애들은 당신을 알 거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그 애들을 통해 알려주고 싶어. 곧 당신은 할 말을 잃겠지. 모든 사람은 진실 앞에서 침묵하는 법이니까. 그럼 이만.

- 72번 창녀로부터 (나왈이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니하드는 다른 편지도 뜯어 읽는다.


이건 고문 기술자가 아니라 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항상 너를 사랑할 거야. 네가 태어났을 때 너에게 약속했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항상 사랑하겠다고. 평생 너를 찾아다녔단다. 결국 찾았지만 넌 날 알아보지 못했어. 네 오른쪽 발뒤꿈치에는 문신이 있어. 그걸 보고 널 알아봤지. 예쁘게 컸더구나. 내가 너를 사랑으로 감싸 안을 테니 위안을 얻으렴. 함께라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없으니까. 너는 사랑으로 태어났어. 그러니 네 동생들도 사랑으로 태어난 거야. 함께라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단다.

- 너의 어머니, 나왈 마르완, 72번 수감자 (나왈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를 다 전한 쌍둥이들은 어머니로부터 남겨진 또 다른 편지를 받는다.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진 후에야 쌍둥이는 어머니의 이름을 새긴 묘비를 세우고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의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너희가 태어났을 때? 그렇다면 그 시작은 공포였겠지. 너희 아버지가 태어났을 때? 그렇다면 그 시작은 위대한 사랑일 거야.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의 시작이 약속이라고 말하고 싶어. 분노의 사슬을 끊겠다는 약속. 너희 덕분에 오늘 드디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어. 사슬이 끊어졌으니 나는 드디어 너희를 품에 안고 너희를 위로할 자장가를 불러줄 수 있겠구나. 함께라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단다. 사랑한다.

- 너희들의 엄마 나왈 (나왈이 쌍둥이에게 보내는 편지)


나왈 마르완의 묘비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니하드이자 아부 타렉으로서 마침내 그녀 앞에 선다.




[관람평]

이 영화는 전쟁과 같은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한 가족이 겪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한 여성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언을 남아있는 두 쌍둥이가 되짚어가는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결말은 충격적인 반전으로 마치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만든 것처럼도 느껴진다. 물론 결말이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여러 번 이 영화를 다시 봤음에도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줄거리 외에도 주제적인 측면, 다양한 부분에서도 뛰어난 부분들이 많은 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1+1 = 2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영화 속에서 나왈이라는 여성의 삶을 되짚어가는 잔느는 수학자이다. 수학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발달된 학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잔느의 지도교수 강의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공부한 수학은 분명하고 명확한 문제에 대한 분명하고 명확한 해답을 찾는 학문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모험을 떠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만날 것이고, 그 문제들은 풀리지 않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겁니다. 친구들은 여러분의 고생이 헛수고라고 말할 것이고, 여러분도 딱히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을 겁니다.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이 배우게 될 이론 수학은 고독한 학문입니다."


영화 속 배경은 레바논 내전으로 설정되어 있다. 전쟁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지금도 이 스토리가 힘이 있는 이유는 세상이 아직도 혼란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는 모두에게 상식인 '1+1 = 2'라는 간단한 수식조차 통하지 않는다. 영화 속 내전은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의 충돌로 그려진다. 물론 종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나왈과 니하드는 서로를 찾는 여정 가운데서 기독교와 이슬람 양쪽의 세계를 모두 경험한다. 그러면서, 윤리나 도덕적인 신념이 흐트러진다. 평소에는 일어나지 않는 이러한 처참한 비극들은 혼란 속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증언의 신성함


이 이야기는 크게 보면 나왈이라는 한 여성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그녀의 자식인 잔느와 시몽이 어머니의 과거를 따라가며 진실에 다다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여정을 나왈의 이야기를 미리 들어서 알고 있는 장 르벨이라는 공증인이 옆을 지킨다.


처음 장 르벨이 쌍둥이에게 어머니의 유언을 들려주며 쌍둥이 각각에게 아버지와 형제에게 전달하라고 했을 때, 쌍둥이 중 시몽은 그러한 부탁을 거절한다. 어머니는 이미 죽었고, 이제는 평화롭다고 말한다. 영화의 중후반 부에도 시몽은 계속해서 자신이 찾는 사람이 이미 죽었을 거라며 그냥 편지를 뜯어보고 끝내자고 지속적으로 말한다. 그때마다 공증인인 장 르벨은 시몽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는 '공증'이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법적인 공증 제도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증언 자체의 신성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나왈이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고 죽는 것이 더욱 평화로울지도 모른다. 그녀가 겪은 끔찍한 일들을 자신이 죽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고, 남겨진 쌍둥이들과 자신을 강간했던 아부 타렉 또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증언을 하지 않는 삶이 더욱 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죽음 이후로도 유언이라는 형식의 증언을 통해 잔느와 시몽이 직접 그녀의 어머니인 나왈의 과거를 되짚어가며 어머니가 겪은 비극적 진실에 다가가 그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를 청산하고 건실하게 사는 것으로 보이는 아부 타렉에게도 그녀는 피해자로서 침묵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피해자가 평화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마주하고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또한, 동일한 인물에게 건네는 다른 편지는 피해자가 아닌 어머니로서 자신이 과거에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을 통해 비극적인 사회가 나아갈 방향 또한 제시하고 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와 비극적인 사건들은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가해자로도 사랑의 대상으로도, 아니면 그 둘 모두로도 볼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나왈의 편지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보여주고 있다. 쌍둥이들의 시작이 감옥에서부터라고 한다면 그들은 복수의 부산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왈은 니하드의 자식으로 잔느와 시몽을 바라봄으로써 증오의 연쇄를 끊고 사랑으로 모두를 감싸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에 진정한 평화 속에서 장례가 치러진다. 니하드 역시 속죄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얼굴로 어머니의 묘비 앞에 한동안 서있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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