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결말포함] 첫잔처럼(2019)

나의 첫 잔을 기억하며 영화 속 주인공과 퇴근 후 한 잔 기울이는 영화

by 뇨리

* 영화의 결말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다면 영화를 먼저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회사 생활에 약간은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영화이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요즘 야근을 많이 해서 그런가 더욱 와닿는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처음 마셨던 한 잔의 떨림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는 좋은 멘토의 모습, 선배의 모습, 좋은 가족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다. 일상에 지친 회사원들에게 직장의 모습 외에 자신의 주변 모습들까지 한 번에 보여줌으로써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밤에 보면 자연스레 야식이 생각나서 위험하다...


음식을 소재로 건네는 위로와 조언


누군가는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먹기 위해 인생을 살아간다. 이것은 종종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술'에서도 동일하다. 많은 직장인들이 회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술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단지 팀원들끼리 친해져야만 한다는 목적을 위해 주구장창 술만 들이붓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익숙한 술과 맛있는 안주를 통해 회사원인 우리들에게 여러 조언을 건넨다. 그리고, 그것은 꼰대 상사가 하는 말이 아닌 동기인 친구가 하는 따뜻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호연은 선배형에게 자신의 사촌형의 음식에 대한 진심을 이야기해 준다.

모든 음식에는 다 결이 있데. 사람의 마음도 생명체에는 다 결이 있다는데, 그런데 그 써는 결에 따라 맛이 변한데. 더 중요한 게 뭐냐면 써는 칼 이래. 음식마다 칼을 다 다르게 써야 된다고 하더라고. 제일 중요한 건 어떤 사장이 그 음식을 요리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야. 제일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마음의 정신상태. 그게 핵심이래.

- 호연의 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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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정희 대표님의 '광어 고노와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고노와다는 해삼 내장인데 이것 자체로는 별로 맛이 뛰어나진 않다. 하지만, 적절한 온도에서 광어의 식감과 만나면 맛이 아주 괜찮아진다. 즉, 서로 온도가 맞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회사 생활에서 중요한 인간관계를 음식에 빗대어 조언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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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음식에 진심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통해 관객의 집중도를 끌어올리면서 술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듯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모든 사람의 멘토인 신대표님은 항상 안주를 잘 챙겨 먹으라고 하신다. 다시 말해, 안주를 먹지 않고 술만 퍼먹는 것은 단지 힘든 회사 일에서 도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느 술만 퍼먹는 회식 자리와도 같을 것이다.


신대표님은 이어서 더욱 중요한 부분을 일러주신다.

요즘 젊은이들 살아가는 방식이 우리 때완 많이 달라.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니가 하고 있는 이 일도 니가 너무너무 원했던 일일수도 있다는 거야. 너 이 회사 들어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청춘을 쏟아부었어. 그거 잊지 말아.
요즘 워라벨, 워라벨 그러는데 물론 좋은 일이야. 그런데, 퇴근 후의 삶이 도피가 되어선 안돼. 주말마다 산으로 필드로 도망치지 말아. 너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여봐. 단, 즐겁게 말이야

신정의 전대표님 대사 中
대표님 : "너 내가 왜 밥 사주는지 알아?"
호연 : "잘생겨서요?"
대표님 : "맛있게 잘 먹으니까. 술은 왜 사주는지 알아? 잘 하라구. 잘 해. 열심히만 하지 말고, 잘 해. 잘해서 남주지 말고 니꺼 잘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고."

이것은 피곤한 회사 생활 때문에 잊고 있었던 처음 회사에 들어올 때의 두근거렸던 감정과 다짐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청년들은 누구나 청춘을 다 바쳐 노력하였고, 그 결과 회사에 입사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을 느꼈을 것이다. 취업을 축하하기 위한 환영회에서 마셨던 첫 잔에는 그때의 다짐과 포부가 담겨 있었다. 지금은 삶에 찌들어 그런 것들을 잊어버렸지만, 이 영화는 그 '첫 잔'의 느낌을 다시 일깨워준다. 회사 생활 중에 마시는 술은 이 일을 잘하겠다는 다짐이고, 거기에 곁들이는 안주는 다시 술을 마시게 하는 잠깐의 여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일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회사 생활이 계속될수록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지만 그때마다 그때의 첫 잔을 기억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좋은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연(浩然)의 초능력


호연의 능력은 초미각이다. 이것은 진정한 맛을 찾아내는, 즉, 사람의 진가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호연이 자신의 초능력으로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용기와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원이 경력이 쌓여갈수록 계속해서 자신감을 지키는 것도 어렵지만 호연은 다른 사람에 비해 더욱 자신이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초미각보다 더욱 눈이 갔던 호연의 진정한 능력은 관계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제 퇴임한 대표님이 아버지처럼 좋아서 만나러 가는 사람이다. 그것은 호연이 대표님의 인품을 알아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반대로 대표님도 호연의 진가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관계에 진심이라는 것은 상대에게 자신의 시간을 들인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은 그가 라면을 끓이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호연이 끓이는 라면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누군가는 라면을 그저 한 끼 때울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그는 라면을 끓임에도 자신만의 신념으로 정성을 다한다. 그렇게 라면을 요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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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관계에 진심을 다하고, 자신의 시간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사는 방법이며, 이것은 영업으로 표현되는 직장 외에 삶의 모든 부분에도 적용된다. 모든 관계에 진심을 다했던 호연은 호연지기(浩然之氣)에서 따온 그의 이름처럼 그의 마음 속에는 어떤 기개와 당당함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태도의 변화가 그의 일과 삶의 모습 또한 변화시킨다.


이 영화는 마치, 퇴근 후 술자리에서 좋은 친구 또는 좋은 선배를 만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들 영화를 틀어놓고 라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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