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아주는 것에 대한 예찬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고 감상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우리 인생에서 태풍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수많은 흔적이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름답게 휩쓸고 지나가라는 바람으로 태풍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사랑도 태풍과 같다.
영화의 주인공인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의 사랑도 태풍 때문에 시작되었다.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던 둘은 함께 스쿠터를 타고 바다로 간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빌었던 '잘될 거야', '행복할 거야'와 같은 소원들은 영화 내내 이어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바람이자, 서로를 놓아주지 못하게 하는 사이비적인 주문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이상적인 바람들 때문에 현재까지도 둘은 태풍 속에 갇혀 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집을 짓고 싶어 한다. 은호는 게임을 통해, 정원은 건축물을 통해 집을 짓고 싶어 한다. 물론 공간보다는 그곳에서 함께할 사랑을 필요로 한다. 처음, 둘이 함께 살면서 사랑을 키워 나갈 때에는 강렬한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 소파도 들여놓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뜨거움이 지쳐가는 것처럼 현실의 어려움으로 소파조차 들일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이 줄어들지만, 정원은 쉽게 그 소파를 포기하지 못한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순간조차도 은호는 빨간 우산을 들고 있지만 정원을 붙잡지 못하고 둘은 이별을 맞는다.
영화에서는 현재의 두 사람이 과거 자신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의 과거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면, 현재는 색이 없는 흑백의 세상이라는 점이다. '만약에 우리'라는 가정으로 아직도 과거의 순간들을 후회하고, 단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놓아주지 못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게 색이 없는 흑백 세상이다. 하지만, 은호의 게임의 엔딩처럼 사랑을 놓아주는 순간 주변에 다시 색이 돌아오는 엔딩을 맞는다.
우리는 항상 사랑이 아름답고, 영원해야 한다는 바람을 갖고 살아간다. 인연이란 그래야 한다고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봄비처럼 찾아온 사랑이 영원할 수 없고, 언젠가 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힘들면 놓아주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를 반추할 때 그 시절 나의 모든 사랑을 주었고, 같이 앉아 소원을 빌었고, 우리로서 존재했었고, 후회 없이 놓아주는 것까지 모두 잘 한 선택이라고 영화는 우리 앞에 마주 앉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