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정의롭지 않은 이유
일요일 출근을 하고 난 정신적 대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다짜고짜 저녁에 영화관을 갔다. 영화 도착 시간에 맞춰 <노 머시: 90분>을 보게 되었다. 시놉시스나 소재만 봐도 어떠한 내용이 펼쳐질지 예상이 된다고 생각해서 별 기대 없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영화는 <서치> 제작진이 만들었는데, 서치의 느낌이 많이 났다. 하지만, AI 기술이 뜨거운 감자인 요즘 시대에게 생각할만한 주제와 영리한 연출, 스펙터클한 장면들로 어필하고 있다. <서치>를 보지 않았다면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장점을 가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최근 AI 기술의 개발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조만간 기계가 수많은 직업을 대체할 거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판사가 가장 먼저 대체되는 직업일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이 많다. 판사는 정해진 법 조문과 판례를 바탕으로 판결을 해야 하기 때문에 AI 판사로 대체되면 더욱 정확하게 판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반대편의 의견인 'AI 판사는 정말로 완벽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영화의 'Mercy' 프로그램은 AI 기술과 증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무죄를 판단한다. AI 판사와 피고인이 열람할 수 있는 데이터는 사람들의 모든 전자기기 정보, CCTV 영상, 신상정보 모두를 포함한다. 현실에서는 불법이지만 영화에서는 판결의 정확도를 더욱 올리기 위해 모든 데이터를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다는 조건을 추가하였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에는 완벽한 증거에 의해 피고가 자신이 유죄라고 설득당하는 느낌까지도 든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핸드폰이 없는 사람의 위치는 파악할 수 없고, CCTV가 없는 곳은 확인이 불가능하며, 인터넷이 없는 공간은 추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나아가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보통 판사는 범인이 아닐 확률이 0%에 수렴해야 유죄로 판결하지만, 이 영화는 범인일 확률이 98%만 넘어도 즉결 사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완벽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 속 세상에서는 'Mercy'로 인해 범죄율이 감소하였으며, 'Mercy'만이 경찰의 희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이토록 신뢰하는 이유와 목적은 처벌을 통한 범죄율의 감소에 있다. 하지만, 완벽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대답은 AI 판사라고 완벽할 수는 없을뿐더러 완벽한 처벌보다는 정의를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시간대가 4DX밖에 없었다. 평소에 4DX는 의자가 흔들리거나 물, 바람이 이상한 장면에서 나와서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4DX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의 주인공 자체가 오랜 시간 의자에 묶여 'Mercy'가 보여주는 화면을 그대로 보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 전형적 '후더닛(Who done it?)' 스토리이다. 그러므로, 4DX로 보게 된다면 관객이 실제 주인공이 되어서 나의 무죄를 증명하는 느낌이 들면서 더욱 긴장감을 갖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 또한, AI 판사로 정면 클로즈업으로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는데, 이때 관객은 완전히 주인공으로서 몰입할 수 있는 점이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영화의 부제인 90분 또한 실제 영화 시간과 동기화되어 더욱 그러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에서 AI 판사는 묶여 있는 피고에게 실제 현장을 주변에 홀로그램 화하여 보여준다. 이 장면을 찍을 때에 실제로는 의자에 주인공이 묶여 있고, 주위를 둘러싼 디스플레이에서 배경 영상을 재생하여 실제 그 상황에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그렇기에, 모든 상황을 주인공 주변에 구현하면서 롱테이크로 촬영할 수 있었다. 따라서, 크리스 프랫은 모든 상황에 대해 계산적인 연기를 해야만 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