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람평/결말포함) SE7EN (1995)

현실은 아름답지 않지만, 어린이들만큼은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by 뇨리

* 영화 <세븐>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95년 범죄 스릴러 영화이다.

비가 쏟아지는 회색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7대 죄악을 모티브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네오 느와르 장르를 설명할 때 항상 좋은 예시로 선택되는 명작이다.


지난 25년 10월에 국내에서 재개봉을 하게 되어 영화관에 가서 볼 수 있었다.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스타일리시하고, 여러 부분에서 뛰어나다. 결말에 반전이 있지만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다시 봤음에도 마지막 장면의 충격은 여전하다. 역시 고전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듯하다.


영화의 메시지는 현대의 무관심에 대한 죄악을 말하고 있는데, 현재 사회에도 이러한 교훈이 유효하다는 점이 왠지 씁쓸하게 느껴진다.



현대의 8번째 죄악 : 무관심


영화는 존 도우라는 범인이 7가지 죄악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하는 메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두 명의 형사가 범인을 추적해 체포하는 수사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죄악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애써 관심을 갖지 못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작가는 비록 극단적인 방법일지라도 관객들에게 하나씩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극 중 인물들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들은 어쩌면 주변에 산재하는 죄악에 무뎌져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뉴욕은 이 영화의 배경인 80~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치안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경제도 불황이었고, 거리에는 범죄와 관련된 흉흉한 괴담도 많이 떠돌았다.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사회상을 반영하여 전체적인 뉴욕의 거리를 어둡고 항상 비가 내리고 있는 날씨로 묘사했다. 그리고, 주인공인 서머셋은 그러한 암울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작가는 존 도우의 입을 통해 도시의 모든 곳에 죄악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흔하다는 이유로 그러한 죄악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 우리의 무관심을 비난하고 있다. 영화 상에서 이미 5건의 살인을 저지른 흉측한 존 도우지만 그의 비난 섞인 질문에 대해 우리는 쉽사리 반박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사회에 여러 가지 죄악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극 중 밀스처럼 그러한 사람들은 그저 정신이 이상한, 나와는 다른 부류라고 치부해 버렸다. 하지만, 서머셋의 대사를 통해 감독은 존 도우를 잡았을 때 '그 사람이 만약 평범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평범하다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나도 존 도우와 똑같이 죄인이라면 계속 외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작가는 이미 나열한 7개의 죄악에 현대인들을 위한 한 가지 무관심의 죄를 더하고 있다. 무관심이란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의미 외에도 상대방에 대한 무시 또한 포함되어 있다. 상대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아닌 주위에 대해 관심을 쉽게 거두고 단지 그들을 정신병자에 죄인으로 치부하곤 한다.


이제는 무관심의 죄악에 대해 속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존 도우라는 미치광이에게 억지 뉘우침을 당하기 전에…



서머셋의 직업과 태도의 변화


영화의 무게를 잡는 메인 주인공은 '서머셋'이다. 그는 사회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어 하는 태도범인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는 형사의 역할을 모두 가진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그의 직업을 형사로 설정한 부분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형사가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을 관객에게 선사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한 편으로는 형사라는 직업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까지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서머셋은 계속해서 '범인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디에서 그러한 지식들을 얻었을까?'와 같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형사보다는 현대의 프로파일러의 역할이다. 이러한 서머셋의 역할은 무관심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범죄자로 대변되는 소외된 사람들의 생각에도 관심을 갖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범인을 잡기 위해 필요한 행위는 역설적으로 하찮은 범인의 생각까지도 알고 싶어 하는 일종의 지옥에서 벗어나 빛에 이르는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그의 태도의 변화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처음에 서머셋은 범죄가 넘치는 암울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는 매일 밖에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메트로놈을 켜고 애써 잠에 든다. 그리고, 그는 범죄가 가득한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찰이라는 직업에서 은퇴하려 한다. 하지만, 밀스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은퇴하려는 행위 자체가 사실은 사회에서 관심을 끄고 눈을 돌리려고 하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고 자신이 먼저 밀스에게 파트너로 남게 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서머셋이 머리맡에서 똑딱이는 메트로놈을 던져 부숴버리는 장면으로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밀스가 연행된 이후에는 어디로 갈 거냐는 경찰 간부에게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 있을 것이라 대답한다. 이것은 더 이상 주변에 눈을 돌리지 않고 항상 그들의 곁에서 관심을 갖겠다는 서머셋의 의지를 보여준다.



밀스의 흔들리는 집


밀스는 7번째 죄악인 '분노'를 형상화한 인물이다. 그는 마지막에 모든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감정에 잡아먹혀 존 도우를 죽인다.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던 밀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까?


영화의 중간에 지하철 때문에 덜컹거리는 그의 집은 밀스라는 사람의 내면 자체를 상징한다. 밀스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쉽게 동요하고 분노한다. 마치 지하철만 옆으로 지나가도 무너질 것처럼 덜컹거리는 밀스의 집과도 같다. 집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서머셋이 놀라자 밀스는 조금만 기다리면 잠잠해진다고 이야기해 준다. 밀스는 자기의 집이 흔들리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흔들림 또한 진정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마지막, 존 도우에게 총구를 겨눈 상황에서도 밀스는 모든 진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내면의 모든 것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조금만 참으면 결국 자신의 집처럼 진정되고 잠잠해진다는 사실을 밀스는 애써 무시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다면 이내 흔들림이 멎어 서머셋과 밀스는 그때의 저녁식사에서처럼 다시 웃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전의 서머셋과 밀스, 트레이시가 함께 식탁에 앉아서 웃는 행복한 모습을 본 이후여서 그런지 영화의 마지막이 더욱 씁쓸한 결말로 남는다.



과연 지금의 사회는 싸워서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가?


헤밍웨이가 말했다.
'세상은 멋진 곳이고, 싸워서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그 문장의 뒷부분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영화에 마지막에 서머셋은 헤밍웨이의 말을 빌어 세상은 싸워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문장의 뒷부분에만 동감한다는 말은 바꿔서 말하면 앞부분은 동감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외면하지 않고 싸워서 지켜야 하는가?

그것은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영화의 초반에 한 부부의 살인사건이 등장하는데, 실상은 매우 간단한 사건이다. 서머셋의 동료 경관은 매우 간결하게 사건을 정리해 준다. 그 부부는 평소에도 자주 싸웠고, 감정이 폭발해 결국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경찰은 보고서만 작성하면 끝이라고 말하지만 서머셋은 '아이들이 봤을까'를 묻는다.


이 영화를 볼 때 보통은 범인이 누구일지 또는 수사하는 방식에만 집중하여 보게 되는데 그렇다면 영화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화의 3/4 정도 되는 부분에서 범인이 자수하기 때문이다. 만약 범인을 잡는 것이 목표하고 한다면 존 도우라는 범인이 잡힌 시점에서 나머지 1/4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영화는 역으로 범인만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처음 부부 사이에 일어난 살인사건에서도 그 집의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고 소외되었으며, 밀스가 존 도우를 쫓는 상황에서도 방 안에 있던 아이들은 범인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밀스는 아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서머셋이 읽던 책에서도 '일곱 아이들이 살해됐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러니 영화 속에서 살해된 피해자들도 사회에서 소외된 어린이로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무관심이 미덕이 되는 사회라면 그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인 다음 세대의 어린이들이 받게 된다. 트레이시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싫어하는 모습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한 트레이시에게 서머셋은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한다면 그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해주라고 조언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아이들과 같은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싸울만한 가치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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