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람평/약스포] 센티멘탈 밸류(2025)

by 뇨리

* 영화의 결말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는 오래전 집을 떠났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가진 딸과 아버지 간의 오래된 애증과 해소의 여정을 그린 스토리다. 시놉시스만 보면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되는 대부분의 가족사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매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이야기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 더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스포가 많이 되지 않는 선에서 메인 흐름만 적을 예정입니다.)


노라 가족의 집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단연 애증의 관계를 가진 아버지 '구스타프'와 그의 딸들인 '노라'와 '아그네스'이다.

어릴 적 노라는 숙제 때문에 집이 되어 생각해 본다. '집의 입장에서 무엇이 행복한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해 노라는 집은 내부가 사람으로 가득 차 북적북적한 것이 행복한 상태일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물론 이것은 노라가 바라는 행복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아버지는 어머니와 싸우고 집을 떠나게 되고, 딸들도 자라 집을 떠나게 되면서 노라의 어머니만 남게 된다. 그리고, 영화 속 시점에서 며칠 전에 그 어머니까지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집은 텅 비게 되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다시 돌아온 아버지는 딸들과 마주하고, 그 사이에는 서먹함과 서운함, 증오와 같은 감정들이 쌓여 있다.



노라의 애증을 없애기 위한 여정


영화는 여느 가족에 있을 법한 부모 · 자식 간의 애증과 이해의 과정을 영화와 연기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노라'는 배우 오디션을 보기 위해 어릴 적 집에 대해 썼던 자신의 에세이를 다시 읽는다. 하지만,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갈매기>라는 유명한 작품의 '니나'라는 인물로 오디션을 보고 배우가 된다. 이는 노라가 자신의 내면의 아픔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프고 절망하기 싫어서 아버지와의 화해하려는 시도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하게도 자신의 아픔을 먼저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모든 것에서 회피하고 싶어 과거에 자살을 기도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로 오디션을 봤어야 하는 그녀는 결국 남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일종의 예술의 세계로 도망친 사람이다.


그러다, 아버지 '구스타프'가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회고전을 열 정도로 저명한 영화감독이다.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아버지는 자신이 직접 쓴 대본을 건네지만 거절당한다. 어찌 보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것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 영화를 찍는다. 나중에 보면 그 대본의 주인공은 첫째 딸 노라였으니, 영화를 찍는 동안 그는 자신의 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은 그도 자신의 어머니(노라의 할머니)와 겪은 아픔 일부를 영화 시나리오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구스타프 또한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고, 상대를 바라보며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애증의 감정을 해소하는 여정을 영화로서 나아가고 있다.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조율하는 역할은 둘째 딸 '아그네스'이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이 '역사학자'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녀는 중간에 자신의 할머니의 기록을 찾아 읽는다. 그녀의 할머니 '카린'은 과거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다 나치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아픔을 가진 사람이다. 아그네스가 자신의 할머니의 과거 아픔을 읽음으로써 상대의 아픔을 정면으로 직면한다. 역사학자는 과거가 비록 비극적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마주 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아그네스는 언니의 이야기가 적힌 대본을 피하지 않고 읽고는 언니에게도 권한다. 노라는 영화의 마지막에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쓴 영화의 주인공을 맡아 연기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자신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 내면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는 모든 연기가 끝난 세트 뒤의 노라의 얼굴을 보여준다. 증오가 잔재한 표정이 아닌 무언가 복잡하지만 조그만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감독이면서 아버지인 구스타프는 'Cut'을 외친다. 단순히 연기가 끝났으니 카메라를 끊는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껏 지속되어 온 자신과 딸 사이의 증오의 고리를 끊어낸다는 의미로 들린다. 영화가 끝난 세트에서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다시 마주 보게 된다. 노라의 인생을 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기 싫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하면서 회피해 왔다. 중간에 노라가 연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대사가 있다. 그녀는 연기를 하면 다른 인물을 구축하여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 끝에 가서는 자신의 감정도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영화의 흐름은 정확히 동일하게 예술의 세계로 도피했던 그녀가 아버지의 영화 속에서 다시 자신의 삶을 연기로써 마주하여 살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일종의 마음속 여정으로도 볼 수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모든 이야기와 감정들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진다. 영화의 제목이 <Sentimental Value>인 이유가 아닐까.



집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영화에서 집은 하나의 인물처럼 느껴진다. 노라가 집의 입장이 되어 본 숙제 때문에라도 그렇게 생각이 된다. 영화는 집의 입장에서 보아도 흥미롭다. 노라의 가족이 화목했던 시절에는 집도 행복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붕괴되고 떠나게 되어 집이 텅 비게 되는데, 이때 집 또한 노라와 똑같은 외로움과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집이 다시 북적북적해지는데 그것은 아버지 구스타프가 집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전 가족들이 다시 합쳐진 것이 아니다. 상당수는 영화 스텝들이다. 노라의 내면이 자신의 이야기와 영화로 대표되는 예술로 다시 가득 차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외롭고 비참한 삶 속에서 우리의 삶을 다시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예술이다. 그것이 나의 내면을 오롯이 마주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의 증오를 끊어내게 만든다는 결말은 영화를 보는 나에게도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아그네스에게 언니가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이 영화가 그러한 역할을 대신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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