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심층리뷰/결말O] 날씨의 아이(2019)

시대적 배경으로 바라본 현대 일본의 사회상

by 뇨리


신카이 마코토의 걸작 <날씨의 아이>는 개봉 당시에는 보지 못했었고, 24년도에 재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뒤늦게 보게 되었다. 물론 전작 <너의 이름은。>에서 뛰어난 색채감과 영상미에 매료되었던 터라 이번 작품의 영상미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감독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했었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결말이 깔끔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인기가 없지만, 이번에 다시 애니메이션을 보니 현대 일본 사회 그대로의 모습과 서정적인 스토리, 영상미 등 많은 부분에서 매우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관람평 : 일본의 시대적 배경의 관점에서]

이제껏 많은 이야기들이 주인공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세상을 구하거나 성장하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세상의 부조리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경제 침체와 그러한 사회 속에서 희생되거나 고군분투해도 답이 없는 다음 세대에게 감독이 "괜찮다"라는 위로를 건네기 위함이다. 물론 이웃나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감이 잘 안 될 수 있지만, 왠지 한국도 일본 경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느낌이 드는 이때에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거리들이 많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이후 세대의 모습


일본은 60~70년대 엄청난 경제 호황을 누렸다. 당시 일본 경제는 세계 2위로 미국을 위협하였다. 당시 자신을 바짝 뒤쫓는 일본에게서 느껴지던 미국의 공포를 그린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다. 당시 일본의 청년들은 호화로운 삶을 누렸고, '일본을 팔면 미국도 살 수 있다'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경제는 침몰하듯 하락하였다. 중간에 경제를 살리기 위한 많은 노력도 있었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복구와 아시아 금융위기 등의 악재가 잇따랐다. '잃어버린 30년'이 일본의 현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을 경제가 몰락한 이후로 보면 더욱 이해가 잘 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호다카'와 '히나'라는 소년·소녀이다. 십 대인 두 사람은 원래라면 학교에 가야 할 나이지만, 학교에 가지 않고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 이유는 둘 다 보호자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호다카는 고향에 부모님이 있지만 도쿄에 오는 배에서 얼굴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학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히나도 어머니가 병으로 떠나자 자신이 가장으로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마치, 다음 세대를 보호해 주어야 할 국가라는 부모가 병에 걸려 더 이상 다음 세대를 책임질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공권력을 상징하는 경찰 또한 주인공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억압한다.


이런 암울한 도쿄의 상황을 애니메이션에서는 비가 그치지 않는 도시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호다카가 도쿄에 도착한 순간부터 비는 멈추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총기, 유흥업소, 성매매 등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그대로 나온다. 이러한 세상에서 호다카와 같은 어린이들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다카와 히나는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된다. 심지어 호다카는 제대로 된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숙식만 해결해 주는 케이스케의 회사에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곳에서 일하는 '나츠미'는 현대 일본의 청년 세대를 상징한다.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내지만 계속해서 탈락한다.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번듯한 직장을 갖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그저 SNS를 통해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음모론이나 미신과 같은 이야기만 제공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청년들이 크면 케이스케(호다카를 거둬준 회사의 대표)가 된다. 잡지에 사람들이 원하는 영양가 없는 기사를 기고하며 살아가는 케이스케는 번 돈으로 유흥업소, 빠칭코, 술에 빠져 하루를 허비하는 중년의 모습이다. 아내와 사별한 그에게는 딸이 있지만 그도 다음 세대를 보호하거나 케어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애니메이션의 모든 주인공은 비가 그치지 않는 일본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며, 사회를 바꾸기는커녕 고군분투하지만 하루를 살아가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들인 것이다.



맑음 소녀 : 세상을 위해 희생되는 다음 세대


히나는 '맑음 소녀'다. 하늘에 기도를 올리면 날씨를 맑게 할 수 있다. 물론, 완전히 맑게 하는 것은 아니고 잠시 동안 그녀의 주위만 맑게 할 수 있다. 비 내리는 것이 일본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면, 히나가 하는 '맑음 소녀 일'은 그러한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다음 세대의 노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세상이 다시 밝아질수록 히나의 몸은 점차 사라져 간다. 침체된 사회를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방향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다음 세대의 희생이 요구된다.


처음 호다카가 도쿄로 오는 배 위에서 물벼락으로 인해 바다에 빠질 위기에 빠지는데, 케이스케가 나타나 그를 구해준다.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삭막한 도쿄에서는 그러한 행동에서도 대가를 요구한다. 현대 일본 사회는 다음 세대가 마음껏 숨 쉬고 살아갈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케이스케의 딸인 모카는 천식이 있어 비가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갈 수 없는데, 이 또한 암울한 사회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 수조차 없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암울한 사회에서 태어난 세대에게 건네는 '견디라'는 위로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일본의 청년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넨다. 현재 일본의 다음 세대는 앞날이 막막한 사회에서 태어났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호다카가 꾸었던 꿈이다. 도쿄에 오기 전 호다카는 섬에 살았다. 섬은 당연하게도 섬나라인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에도 역시 비가 내리고 있었고, 꿈속에서 호다카는 자전거를 타고 필사적으로 빛을 쫓는다. 어찌 보면 암울한 세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희망을 붙잡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곧 섬의 끝에 다다르고 빛은 바다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현재 사회의 젊은이들도 똑같이 빛을 쫓고 있지만 왠지 손에 집힐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세상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할수록 자기 자신만 희생되고 지쳐간다.


애니메이션의 결말에 세상은 맑아지는 것이 아닌 여전히 비가 내리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그것은 앞으로도 일본 사회 자체가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내포한다. 작품 후반부 타키의 할머니는 '도쿄는 원래 만이었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라는 말을 한다. 또한 케이스케가 취재를 하러 간 신사에서도 날씨라는 것은 원래 인간의 기분과 상관없이 변한다고 말한다. 이는 일본의 경제가 부흥한 것도, 다시 쇠락한 것도 인간의 의지와 노력 때문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누군가의 특출 난 능력이나 잘못이 아닌 그저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인간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 감독은 다음 세대 간 연대와 사랑에 집중한다. 애니메이션의 영어 제목은 'Weathering with You'이다. 'Weather'는 날씨라는 뜻 외에도 '견디다, 버티다'라는 뜻이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목은 '당신과 함께라면 버텨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주인공인 호다카는 세상을 안정시키는 것보다 암울한 사회 속에서 히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히나를 구하는 과정에서 호다카는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도움이 아닌 사회에서 소외된 케이스케, 나츠미, 심지어 나기에게 도움을 받는다.

감독은 현재 일본이 이렇게 된 것은 다음 세대의 탓이 아니며, 암울한 사회이지만 다음 세대끼리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히나가 날씨를 맑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과 감정을 밝게 만드는 것과도 연관된다. 사람들이 히나를 부른 이유들을 보면 사실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일들이다. 결혼식, 유성우를 보는 일, 경마, 코스프레, 운동회와 같이 일상의 작은 일들이다. 즉, 옆에 있는 사람과 현실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이 암울한 세계를 넉넉히 버텨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들은 분명 괜찮을 거야!"




[연출적인 측면]

전작 <너의 이름은。>에서는 황홀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색채와 빛의 묘사가 아름다웠다. 시간이 가며 빛이 변해가는 모습은 작품을 '빛의 예술'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도 색채와 빛에 대한 묘사는 여전하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이번에는 빛 외에도 물에 대한 영상미까지 확장된다. 창가에 물방울이 맺히고 떨어지는 장면이나 바닥에 빗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만들며 튀어 오르는 장면들은 주제적인 측면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는 뛰어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도쿄에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통해 현대 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날씨를 이용하여 표현한 부분이나 날씨를 인간의 마음으로도 표현하면서 세상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에 하는 등 감독의 뛰어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뭉클하면서 뛰어났다고 생각되는 장면은 호다카가 히나를 구하기 위해 철로를 뛰어가는 부분이다. 과거 일본의 경제 호황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중 하나가 '신칸센'일 것이다.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인 신칸센은 당시 멈출 줄 모르고 달려가던 당시 일본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이상기후로 인해 기차는 멈추었고 선로는 여기저기 부서져 있다. 마치 멈춰버린 일본의 모습처럼 보인다. 호다카는 그런 멈춘 사회를 의미하는 철로 위를 거꾸로 달려 히나를 구하러 간다. 경제를 일으킨다는 현재 일본이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로 뛰어가며 히나를 구하러 가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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