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3D 블록버스터 혁명
영화의 제목인 '아바타'는 신의 화신(神의 化身)을 뜻하는 힌두교 용어. 신이 천상계에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는 것을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인류가 진리를 잊고 악에 빠져있을 때 진리를 가르쳐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신의 대리자로서 아바타가 등장한다. '비슈누' 신의 가장 유명한 아바타로 붓다(부처)가 있다. 이 때문에 불교의 원산인 인도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에 자연스레 흡수되었다.
<아바타>는 가히 3D 블록버스터 혁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 역대 흥행 1위인 영화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는 감독이고, 이 영화는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3D로 제작되어 엄청난 충격과 함께 하나의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물론 그렇다고 흥행한 3D 영화들이 뒤를 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3D 영화를 어지러워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감독 자체의 능력이 뛰어나 작품이 흥행했던 것 같다. 이번에 다시 한번 영화를 보았는데 지금도 밀리지 않는 기술력, 영상미, 스토리 모든 부분에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갈등 구조는 명확하다. 인간들이 새로운 행성 '판도라'에 자원을 얻으려 들어가면서 원주민과 충돌하는 것이 메인 스토리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과거 영화 <죠스>에서부터 파생된 'High Concept Movie'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컨셉을 단순화하여 관객들이 스토리를 쉽게 이해하고 영화에 더욱 몰입하도록 만든다. <아바타>에서도 인간을 빌런의 위치로 설정하여 더욱 쉽게 나비족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스토리 내 나비족은 과거 미국이 땅을 넓히는 과정에서 학살했던 원주민들로 보이기도 하고, 제국주의 시대 열강에 의해 침탈당한 사람들로도 보인다. 제국주의 시대에 침탈의 목적은 물론 자원과 시장의 확보였겠지만 표면상 이유는 황당하게 미개한 지역의 계몽이었다.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불'이다. 보통 계몽의 상징은 횃불로 많이 표현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인간들의 침략과 자연에 대한 파괴를 불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아바타의 몸속에 들어간 제이크가 밀림 속에 홀로 떨어졌을 때 그는 횃불을 만든다. 그리고, 그 불로 주변의 동물들을 위협한다. 이후 네이티리가 나타나 제이크를 구해주는데, 그녀가 동물들을 쫓아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횃불을 끄는 것이었다. 이 행동은 문명에 저항하고 자연을 수호하려는 나비족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횃불을 끄자 발달한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운 본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이후 쿼리치 대령이 이끄는 군대가 쳐들어와 나비족의 근거지를 태우는 장면은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의 절정이고, 한편으로는 베트남 전쟁에서 소이탄을 쏟아붓던 미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판도라 행성의 모든 나무들은 전기화학적으로 서로 소통한다. 마치 인간 뇌 속의 시냅스처럼 정보의 업로드/다운로드가 가능한 일종의 네트워크인 셈이다. 모든 생물은 판도라에서 서로 공존하며 살아간다.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공생이지만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외부 세계와의 공생과 자기 내면과의 공생 모두를 다루고 있다는 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제이크는 아바타의 몸에 링크하여 판도라 행성을 체험한다. 이 모습은 마치 아이가 태어나 세계를 배워가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처럼 보인다. 처음 제이크가 일란성쌍둥이의 유전자로 배양한 아바타를 마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의 아바타는 마치 배에 탯줄을 감고 있는 태아의 모습이다. 게다가, 다리를 쓰지 못하고 휠체어를 탄 제이크의 모습은 유아기를 나타내는 듯하다. 그리고, 제이크가 아바타에 처음 들어간 장면에서 그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의 모든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세상을 체험하는 영락없는 어린 아이다.
'왜 영화의 주인공이 제이크일까'를 생각해 보면 그는 아바타 조종사 중에 유일하게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판도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제이크는 그들 중 가장 순수하게 판도라라는 세계를 있는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배워갈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차히크인 '모앗'이 하늘의 사람들의 잔은 가득 차 있어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하자 제이크는 "제 잔은 비어 있는걸요."라고 대답한다. 이때부터 제이크는 네이티리를 통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비족과 생활하며 제이크는 모든 것은 자연에서 빌려서 언젠가는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나아가 나 자신도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그렇기에 우리도 세계의 일부로서 나비족처럼 서로 협력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될까? 감독은 <아바타>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의 화합을 이루어냈을 때라고 답하고 있다. 모든 나비족은 성인식 이전에 반드시 자신의 이크란과 교감을 이루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제이크는 네이티리에게 자신의 이크란을 어떻게 알아보느냐고 묻는데 그녀는 "널 죽이려 할 거야"라고 일러준다. 제이크가 이크란 무리에 다가가자 그중 한 마리가 하악질을 시작하고, 제이크는 자신의 이크란과의 힘겨운 사투 이후에 결국은 교감에 성공한다. 교감에 성공한 제이크는 자신의 이크란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 장면은 제이크가 내면의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가 자라 사춘기가 시작되면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속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수많은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고 심한 경우 자신에 대한 혐오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즉, 영화는 자신의 내면의 혐오하는 것들을 '이크란'이라는 생물로 시각화하고, 그 이크란을 길들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화합하는 모습을 시각화하고 있다. 즉, 자기의 내면을 직시하고 그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며 화합하는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된다.
나비족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생물과 교감할 수 있는 촉수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교감 기관을 이용하여 다른 생물과 말 그대로 연결된다. 다른 생물의 근육, 심장박동 외에 감정까지 느낀다. 이것이 그들의 교감 방식이다.
나비족의 인사는 'I See You(당신을 봅니다.)'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상대방을 눈으로 '그냥 본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당신의 영혼을 봅니다' 또는 '당신을 이해합니다'라는 뜻을 가진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의 내면의 감정을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상대를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진정한 공감과 공생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비(Na'vi)라는 이름은 마치 'Navigation'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나비족이라는 존재는 영화를 보는 인류에게 공생과 화합을 위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일종의 내비게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아바타로 링크할 때 인간의 육체는 잠이 든다. 반대로, 아바타의 몸이 잠에 들면 다시 인간의 육체에서 제이크는 눈을 뜬다. 마치 아바타로 살았던 판도라 속 세상은 꿈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첫 장면은 하늘을 날아가는 주인공의 시점쇼트와 함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다리를 다쳐 걷지 못하게 된 제이크는 꿈속에서나마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영원히 꿈을 꿀 수는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꿈에서 깨어난다. 주인공인 제이크는 사실상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모습이다. 우리도 현실에서는 별 볼 일 없는 모습이지만 영화를 볼 때만큼은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가상의 공간을 누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꿈에서 깨어나듯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게다가, 제이크가 아바타에 연결되는 동안 육체는 기계 안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데 이것은 상영 시간 내내 의자에 고정되어 영화 속에 빠져드는 관객의 모습이다.
초반에 판도라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의 선미에 판도라 행성이 비쳐 보이는데, 이것은 판도라 행성으로 향하고 있지만 그 행성은 사실상 우주선이 떠나온 지구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영화 <아바타> 속 판도라 행성은 놀랍게 지구와 닮아 있다. 그리고, 인간과 나비족 모두를 대표하는 제이크는 이 두 세계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의 기로에 놓인다. 영화 초반부터 쿼리치 대장은 인간의 편에 서면 제이크의 다리를 고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심지어 중후반부에는 회사의 승인까지 받아내게 된다. 제이크가 다시 지구로 돌아가게 되면 자신의 다리로 새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판도라 행성을 선택하게 되면 아바타의 몸과 나비족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두 세계의 대칭 구조는 인간의 군대와 나비족 간의 전투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두 세력의 외관은 사실상 똑같다. 땅에서는 앰프슈트(자신의 행동을 따라 하는 탑승형 로봇)를 탄 인간과 파리(말의 형상을 한 생물)를 탄 나비족이 대치하고, 하늘에서는 전투선을 탄 인간과 이크란을 탄 인간이 대결을 한다. 주인공인 제이크는 리더로서 토루크를 타는데 이에 대항하는 쿼리치 대령은 '드래곤'이라는 거함을 타고 부대를 지휘한다. 완전히 동일한 병력 배치이다. 더욱 흥미로운 장면은 마지막 제이크와 쿼리치 대령의 1:1 승부이다. 쿼리치 대령은 앰프슈트에 들어가 아바타 몸에 들어간 제이크와 싸운다. 둘 다 동일하게 자신의 몸과 연결된 또 다른 육체로서 상대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어느 세계에서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한 제이크에 대한 의례로 끝을 맺는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영원한 꿈을 꿀 수 없어 인간의 육체에서 눈을 뜬 제이크는 마지막에 가서 아바타의 몸에서 눈을 뜸으로써 자유로운 세상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것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관객에게 영화라는 세계 속에서 영원히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