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시대를 그대로 담은 SF 다큐멘터리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영화를 먼저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프리칸스어로 '분리', '격리'를 뜻하며 냉전 시기부터 남아공 국민당 독재 정권이 1948~1994년까지 실시한 인종차별 정책. 본질적으로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을 위한 정책이었다.
요하네스버그의 디스트릭트 6(District 6)는 과거 정책 당시 케이프타운의 강제 이주 지역을 가리키는 역사적 장소이며, 이 영화의 제목은 6을 뒤집은 것이다. 영화에서 외계인은 마치 벌레처럼 보인다. 이는 당시 백인들이 느꼈을 흑인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이 영화의 장르는 SF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화 자체가 실제 과거 요하네스버그에서 있었던 흑인 차별 정책을 그대로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차별받는 대상이 흑인이 아닌 외계인으로 바뀌었을 뿐. 이 작품이 '닐 블롬캠프'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알고 있는데, 자칫 무겁고 비극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감독이 자신이 상상력과 뛰어난 연출을 통해 아주 흥미로운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인물들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화면의 정중앙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의 설명과 뉴스 화면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이러한 장치는 몇 가지 이점을 가진다. 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전의 배경 설명과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관객은 내레이션에 비해 거부감 없이 방대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뉴스 형식의 장면들은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영화 속 갈등은 크게 3가지 집단에 의해 일어난다. 용병(MNU), 나이지리아 갱단, 프런이다. 용병들은 MNU를 등에 업고 프런을 핍박한다. 반대로, 갱단은 프런을 착취한다. 어찌 보면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두 집단의 목표는 똑같다. 외계인의 무기를 얻는 것이다. 퇴거 명령을 위해 사인을 받으러 다니는 프로젝트는 사실 그들이 숨기고 있는 불법 무기를 단속해 수거하기 위함이고, 갱단 또한 그들의 무기를 고양이 통조림으로 거의 헐값에 사들인다. 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은 두 집단 모두 외계인의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외계인 무기는 바이오 기술이 접목되어 외계인의 DNA가 있는 사람에게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아무리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정작 인간들은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들이 사족을 못쓰고 사들이는 무기가 사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무기로는 차별을 없앨 수도,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도 없다. 그렇기에 그러한 세상에서 그들의 우주선은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영화 후반부에는 수송선을 둘러싸고 용병과 갱단이 교전을 벌이는데, 어느 쪽이 용병이고 갱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인간 측 용병과 사실상 갱단과 같다.
그렇다고 영화는 마냥 프런의 편만을 들지도 않는다. 영화 속 프런들은 그저 바보같이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거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퇴거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도 그들은 퇴거라는 말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이었다면 프런들은 사회의 정책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신들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판단조차 못하는 미련한 모습인 것이다. 이렇듯 감독은 인간과 프런 양쪽 모두를 비난하고 있다.
그럼 영화는 누구의 편을 들고 있는가? 영화의 주인공은 비커스와 크리스토퍼이다. 이들은 각각 인간과 프런의 대표이다. 비커스는 프로젝트의 책임자이고, 크리스토퍼는 심지어 메시아의 모습으로까지 그려진다. 감독은 두 인물 모두에게 중점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미래를 위해 투쟁하기 때문이다. 비커스는 자신의 미래와 동료인 크리스토퍼의 미래를 위해 싸웠고, 크리스토퍼도 자신의 아들과 동족의 미래를 위해 비커스와 함께 싸웠다.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쓸모없던 무기가 그들에게는 미래를 위한 도구로써 작동하게 된다. 그렇기에 마치 멈춰 있던 사회를 의미하는 모선이 두 사람이 함께한 순간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 초반 비커스는 능력은 없지만 인간의 편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그저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앞장서 퇴거명령서에 사인을 받으러 다니고, 지저분한 집에 친히 들어가 불법 무기들을 수색한다. 이는 프런들이 본능만을 따라서 열심히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그러다 그는 유동체를 들이마시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서서히 프런으로 바뀌어간다. 프런이 되자마자 그는 인간 사회에서 분리되어 차별의 대상이 된다. 첫 번째 분리는 그가 외계인 팔을 들키자마자 아내에게서 격리된 것이다. 프런은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사회의 시선을 매우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후에 MNU에 잡혀간 그는 프런들이 당하는 생체 실험을 당하고, 시설을 탈출한 후로는 인간에게 쫓기는 꼴이 된다. 결국 프런으로 전락한 비커스는 프런들이 사는 디스트릭트 9로 쫓겨갈 수밖에 없게 된다. 어쩌면 외계인들을 디스트릭트 9에 몰아넣은 것은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시선 때문일지 모른다.
그는 외계인과 인간의 DNA가 완벽히 균형을 이룬 상태이다. 여기서 '균형'이라는 단어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반에는 프런들의 강제 퇴거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뽑혔을 정도로 인간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치료보다 프런인 동료(크리스토퍼)의 탈출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크리스토퍼를 탈출시킬 때, 그는 프런을 닮은 엑소 슈트(프런의 강화 로봇)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그가 프런이라는 집단 속에 완전히 포함되어 동족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그가 인간을 배신하고 외계인의 편으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단순히 그가 외계인의 편으로 넘어간 것으로 영화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의 결말부에 비커스의 아내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녀는 누군가 집 앞에 쓰레기로 만든 꽃을 두고 갔다는 말을 하는데, 그다음 쇼트는 쓰레기장에 앉아 쓰레기로 꽃을 만드는 프런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오드아이를 가진 것으로 보아 그 프런은 비커스일 것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은 비커스의 인터뷰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그리고, 그 인터뷰 속에서 그는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아내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팔불출의 모습이다. 이것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커스가 자신의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비록 현재 그의 모습은 프런이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공존이란 어떠한 모습이나 어느 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닌,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중한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차별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영화는 프런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뉴스 화면이나 그들의 징그러운 모습을 클로즈업하여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화면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들에 대한 비호감을 갖게 한다. (프런에 의한 기차 탈선 뉴스도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는 프런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미디어에 나오는 정보를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뉴스가 그렇게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디스트릭트 9은 처음부터 철조망과 군대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그들을 직접 볼 수 없고, 대신 인간의 입장에서 편집한 영상을 통해서만 그들을 볼 수 있다. 이때 뉴스가 어떤 목적을 갖고 편집된다면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왜곡된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즉,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속에서 프런들에 대한 소식은 뉴스, CAM, 다큐멘터리 카메라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즉,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커스가 불리한 상황에서는 카메라를 황급히 돌리는 것을 보면 거꾸로 사람들이 보고 있는 영상은 인간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모아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커스가 프런이 되어 쫓길 때 뉴스에서는 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쏟아낸다. 그가 외계인과 성관계를 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심지어 전염된다는 보도에 시민들은 즉각적으로 그를 두려워하고 피하게 된다. 또한, 그의 아내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비커스를 볼 수 있는지를 묻지만 그녀의 아버지이자 비커스의 장인인 스미트는 단칼에 거절하고 거짓을 전해준다. 그렇게 아내와 비커스는 직접 만나 오해를 풀지 못하고, 전화라는 수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통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끝까지 만나지 못하고 단절된다. 언론의 무서운 점은 평범한 인간도 순식간에 외계인이라는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도망치는 동안 상공에 떠있는 커다란 우주선은 마치 그를 따라가며 지켜보고 있는 카메라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반면 비커스는 직접 디스트릭트 9에 들어가 자신의 눈으로 프런들을 보고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처음 크리스토퍼의 아들을 만났을 때, 그는 비커스가 건넨 사탕을 다시 비커스의 눈에 던진다. 이것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비커스를 향한 질책일 것이다. 하지만, 프런의 삶을 경험한 이후 그의 한쪽 눈은 프런의 것으로 변한다. 마지막 프런으로 변했을 때에도 비커스는 인간 시절의 초록 눈과 프런의 노란 눈을 모두 가진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입장과 외계인의 입장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유튜브나 AI 영상이 판치는 요즘 어떤 현상을 제대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점점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