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 banchetto

The banquet ; 향연

by 김뇨롱

"그냥 복부 CT를 받아보시는 게 어때요?" 윌은 검사용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배 위로 올라간 셔츠를 내려 다시 자신의 바지춤으로 집어넣었다. 면 소재의 플란넬 셔츠 아랫부분은 그의 손에 이끌려 느슨한 벨트에 감긴 바짓단 아래로 뭉쳐져 사라졌다. 그는 습관적으로 왼쪽 손목에 차고 있던 로클랜드 쿼츠를 흔들며 그 자리에 앉았다. 그에게 CT를 권유한 의사는 잠시 차트에 뭔가를 급히 적고는 정리를 시작했다. 그의 명찰에는 J.리버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게 내 첫 방문이야. 처음부터 CT 찍는 환자 봤어?"


"대학병원이면 가능하죠. 동네는 없어서 못 하는거에요."


"쓸데없는 소리말고." 윌은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리버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가 문제일 것 같아?"


리버는 자신의 손에서 보라색의 니트릴 장갑을 벗겨내며 말하였다. "청진기 진료하고, 복부 간이 진단까지 했지만...이건 소화 문제라기보다 뭔가 더 심각한 문제 같아요."


"심리적 기전을 말하려면 네가 여기서 나가야할 것 같은데."


"선배님이 그렇게 말하셔도 어디까지나 제 전문적 소견입니다. 소화기내과로 오신 건 선배님이잖아요." 리버는 피식대며 의료 차트를 넘겼다. "오히려 선배님이야말로 지금 블랙 컨슈머가 되기 직전이신 것 같은데..."


윌은 쓸어넘기던 머리를 그대로 헝클어 늘어뜨렸다. "그럴거면 효소 보충형 소화제나 줘. 약국에서 대충 구할 수 있는 거 말고 처방전으로 받을 수 있는 걸로."


"육류 과식이라도 하세요? 그런 문제가 아닐 거 같은데..." 리버는 차트에 마저 정리를 하더니 이동의자를 가져와 윌의 앞에 마주 앉았다.


"선배, 심리적 기전이니 이런 건 말씀하실수는 있어도..아시잖아요? 지금 약 드실거면 소화제가 아니라 정신질환 쪽으로 가셔야해요. 소화도 그렇지만 섭식 자체를 거부하시는 거잖아요, 지금."


"속이 거북한 건 사실이잖아. 그래도 하루 한 끼 이상은 먹고있다고." 윌이 말하는 사이 리버는 자신의 옆에 가져온 텀블러를 열어 한 모금 들이켰다. 안면근육이 수축하며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열고 투명한 액체가 입술 사이 자리한 이빨 안쪽 공허로 사라지는 모습은 윌에게 있어 기묘한 프릭쇼처럼 느껴졌다.


"왜요, 드려요?" 리버가 말했지만 윌은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텀블러를 닫았다.


"하루에 한 끼 먹는걸로 효소형 소화제를 요구하는 환자는 없어요." 리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트를 정리하더니 윌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씀해주신대로 과하지는 않게만 처방할게요. 다만 이것만 믿지 마시고 제발 다른 상담도 받아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원하지 않아도 조만간 복부 CT라도 찍을 것 같으니까."


윌은 대답없이 외래진료실을 나서고 있었다. 순간, 리버가 그를 불렀다. "선배."


"왜?"


리버의 손에는 자켓이 들려있었다. "이거 가져가세요. 요새 뭐 자주 빼먹고 그런 건 아니죠?"


"아냐." 윌은 단답과 함께 자신의 자켓을 그대로 낚아채 외래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한니발의 말에 윌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몇 번이나 스푼으로 한니발이 준비해 온 수프를 몇 번이나 떠낸 뒤 다시 그 자리에 붓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 정신을 차린 윌은 재차 물었다. "이게 뭐라고 했었죠?"


"콩소메 더블. 고기와 뼈를 두 번 끓여내고, 계란 흰자, 다진 고기, 야채로 다 한 번 걸러내 완전한 투명함을 얻는 수프입니다." 한니발이 말하며 자신의 그릇에서 윌이 하던 것처럼 한 스푼 뜨더니 천천히 다시 부었다. 똑...똑...얼마 남지 않은 맑은 수프가 그대로 스푼에서 발아하여 근원지로 낙하해 퍼져 사라진다.


"이 액체만 본다면 수프라는 것도 알아보지 못할겁니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거쳐왔는지 알 수 없죠.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향기를 맡아보는 것 뿐입니다. 재료의 깊은 풍미가 서려있죠."


...그리고 맛을 보는 것.


한니발이 말하며 윌이 바라보는 앞에서 스푼을 그대로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 이태리제의 은빛 스푼 한 가운데 찰랑거리던 투명한 풍미는 그대로 빨려들어 한니발의 입술을 비집고 천천히 사라져갔다. 이내 그의 입술 주름이 스푼에 그대로 부딪히며 얼마 남지 않은 액체를 비워낸다. 윌은 마치 자신의 시선과 분위기, 집이 가진 공기마저도 단숨에 그가 들이키는 호흡 속에 빼앗겨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비스킷이라도 되는 듯 한 조각 꺾어내 섭취당하는 순간, 스푼에 닿았던 한니발의 입술 주름이 그대로 수축하다 이완하며 수프가 가지고 있던 윤기를 그대로 가져갔다.


그 다음으로 윌의 시선이 맞딱뜨린 건 바로 한니발의 두 눈이었다. 수프를 음미하는 입술과 상관 없다는 듯 미동도 없는 그의 두 눈동자는 정적이면서도 생동하는 빛을 띠며 나른하고도 집요하게 윌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한니발의 입술 사이로 들어가는 기분에 윌은 이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눈꺼풀을 연신 깜빡거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동작에 동기화라도 된듯 한니발의 왼쪽 입꼬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만 슬쩍, 올라갔다.


"...사실 이렇게 건더기가 없다면 컵에 주셔도 마실 수 있었을텐데요." 긴장을 풀겸 윌이 중얼거리자, 한니발도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식사에 제대로 임했다.


"콩소메 더블은 엄연한 '음식'입니다. 섭취하는 방법을 정해주는 것도 음식과 식재료를 향한 존중이죠. 그리고...제대로 섭취하는 걸 어려워하시는 것 같은데 컵에 드렸다면 더 힘드실 것 같아서요. '한 잔'보다는 '한 스푼'정도가 당신에게 적당할 것 같았습니다."


다시 한 스푼 뜨며 하니발이 바라보는 눈빛에, 윌은 그를 따라 한 스푼을 떠서 자신의 입술에 가져갔다. 별볼일 없는 미량의 액체였지만 아침에 복용한 매캐한 약보다는 훨씬 풍미가 깊은 것이었다. 천천히 한 스푼 씩 식사를 해보는 윌의 옆에 놓인 소화제 약병을, 한니발이 곁눈길로 바라보았다.




"바꿔줘."


대뜸 외래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간이 책상 위에 올려둔 약통을 보며 리버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요새 뭐 수사하는 건 없어요? 시간이 남아도시나보네."


"너 때문에 세 알이나 먹어도 효과가 없잖아." 그대로 외래 침대에 걸터앉아 미간을 매만지며 윌이 말하였다.


"소화제를 달라고 하신 건 선배잖아요, 제가 아니라." 리버는 차트를 뒤적이고는 이내 자리에 두며 들고있던 볼펜을 가슴께 포켓에 꽂았다. "물어봐도 답이 뻔할 것 같긴 한데...섭식 장애로 상담 받아보시긴 했어요?"


"...보면 모르나."


이번에는 리버가 이마를 매만지며 약통을 들었다가 그대로 두며 말했다. "알잖아요. 이건 도로 가져가요. 제조된 이상 물리는 건 불가능해요. 잘 알면서."


"그래서..바꿔줄거야 말거야."


윌이 말하는 사이 리버는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바라보았다. 윌은 그 모습을 보더니 혀를 찼다. "업무 태만이네." 말하는 사이 리버는 잠시 차트를 옆구리에 끼고 핸드폰으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선배 자기소개고, 이건 놓쳐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뭔데?" 말하는 사이 그가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음이 들려왔다.


"잘하면 더 큰 병원에 이직할 수도 있어요. 꽤 저명한 선배가 연락이 왔거든요."


"나 말고?"


"네, 그거 참 재미있네요." 또 한 번 빠른 타이핑 소리와 함께 그가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음이 들려왔다. 리버는 부러 잔기침을 해가며 핸드폰을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저한테 선배가 선배 한 명 뿐인 줄 아세요?"


"그래, 그거 참 재미있네." 윌은 맞받아쳤다. 리버는 잠시 차트를 보곤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 같아선 이 병원 정신상담쪽으로 연결해주고 싶긴 한데...어차피 그래봤자 환자가 비협조적이고."


이내 리버는 한숨을 쉬며 포켓에서 다시 펜을 꺼내 차트에 뭔가 적기 시작했다. "효소 보충쪽이 소용 없으면 위장 운동 보조하는 쪽으로 가보죠." 리버는 그렇게 말하더니 처방전을 건넸다. 윌은 대꾸도 없이 그가 건네는 처방전을 들고 바로 진료실을 나섰다.




"요즘 식사를 자주 거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잭이 윌에게 말해온 것은 바로 사건현장에서였다. 최근까지 강력계에서 담당하고 있던 연쇄 살인 사건이 FBI를 거쳐 잭 크로포드에게까지 넘어왔고 결국 윌에게까지 도달했다. 그가 받아본 보고서에 따르면 별칭 '체스맨'은 처음에는 시신 옆에 체스말을 두는 정도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으나 점점 시신을 다루는 방향이 기괴해져 결국 일반 수사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피해자의 옷이며 장신구, 신발까지 모두 제거하고 마치 사물의 일부인 것처럼 반으로 접거나 뭉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숨겨놓는다. 게다가 체스말은 이제 그들의 입 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약 1개월 전 슬럼가 뒷골목에서 발견된 시신이 전과는 다른 체스맨의 수법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다.


"일하는 장소 보면 식사를 거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잖아요." 윌은 너스레를 떨며 차에서 나왔다. "근데...누구에게서 들으신거죠? 렉터 박사에게서 들은건가요?"


"블룸 박사요." 잭이 윌과 함께 차에서 벗어나 걸어가며 말했다. "며칠 전 그녀가 당신과 식사를 하면서 당신이 잘 먹지 못하는 것 같아보였다고 하더군요."


"사건을 조사하지 못할 만큼 못 먹진 않는데요." 특유의 비틀린 미소가 걸린 윌은 그를 잠시 바라보고 말했다.


"당신도 엄연히 제 관리하에 있는 팀원입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잭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윌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겨울, 한기가 서린 사이 그의 비좁은 미간은 충분한 불편과 염려를 담고 있었지만 윌은 그 기색에 어울려줄 기분이 아니었다.


"좋아요, 알겠습니다."


잭은 그 이후로 별다른 말을 던지지 않았다. 그가 할애하는 '걱정'의 영역과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그 무심함은 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엄격한 선상 아래에서 넘나드는 고통 없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 기댈수도 없지만 떠안지도 않는 고요함. 윌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했다. 텅 비어있는 위장 속까지 현장의 공기가 그를 메웠다. 차갑고, 뭉근했다.


클럽 822의 뒷골목에서 발견된 시신은 그가 평소 보아왔던 예술적 전시와는 달라보였다. 그것은 거의 폐기에 가까웠는데, 주변에 버려둔 헌옷가지 사이에 그대로 반으로 접혀있어서 자칫하면 뭉친 옷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현재는 감식을 위해 주변의 사물을 정리하고 있던 참에 접힌 형태의 시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시야를 교차하는 밝고 거대한 시침이 그의 앞에 드리워졌다. 이내 그 기준선은 그의 눈앞에서 진자운동처럼 눈부시게 교차하며 시간선을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접힌 상태에서 그대로 펴져 바닥에 눕힌 여성의 시신에 가징 먼저 입혀지는 것은 속옷이다. 시반이 도드라지지 않는 것은 이 때만 해도 눕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발견되었다면 둔부 울혈이 심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이 다음에는 바지를 입히고 웃옷을 입히고...기묘하다. 인형놀이를 하는 것만 같다. 가차없는 중력이 버팀목 없는 시신의 일부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클럽 뒤켠에서 대충 바라보면 그저 단순히 취객으로밖엔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옷을 입히곤 난 다음에는 신발. 발목에 존재하는 톱니바퀴같은 자국은 피해자가 착용한 양말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 다음은 악세사리. 겨울의 자외선을 피한 오른손목의 밝은 띠는 평소 차고 있었던 손목시계를 짐작케한다. 유리파편. 깨트렸다. 지금 이 순간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벅찬 마음은 4자리 숫자로 변환된다. 귀걸이를 빼낸 흔적이 섬세하다. 다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뒤통수 목 부근에 애쓴 흔적이 보인다. 후크형 귀걸이라도 이미 사망한 시신에서 빼내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복원 속에 그는 드디어 작업을 시작했다. 클럽에 들어온,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여성. 나와는 접점조차 없는, 지극히 고고하고 낯선 타인.


...게임을 하고 싶어.


올라설 수 없는 어려운 존재가 아닌 '수단'이었으면 좋겠어. 네가 가진 그 낯선, 내가 알지도 못하는 걸 모두 내려두고 나의 수단이 되는 거야. 이제 시간축은 그의 눈앞에서 그가 재현해온 '복원'을 정방향으로 재생하기 시작한다. 시신의 악세사리를 힘겹게 빼내고, 손목시계를 풀어 내려뜨린 뒤 시간이 멈춘 걸 확인하고 바지주머니에 넣는다. 이것은 멋진 전리품이다. 단순한 옷가지나 증거가 가지지 못하는 정교함. 나는 감탄한다. 물론 이런 것 때문에 그녀를 고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은 필수적이다. 난 단순한 것에서도 쉽게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니까.


신발을 벗겨내고 옷을 벗겨낸다. 태생 그대로의 몸통이 드러난다. 그래, 이대로라면 훌룽하게 내 다음 말이 될 수 있어. 한 칸 앞으로, 아니면 직선으로 쭉 이동할래? 아니...너는 대각선이 어울려. 고고하고 지적인 그 이미지처럼 말이야. 나는 널 알지도 못해. 알 생각도 없고. 하지만 이제 넌 그런 걸 신경쓰지 않잖아.


"지금까지 발견된 체스말은 화이트 계열의 폰 2개, 룩 3개, 나이트 1개였어요. " 도중에 조사관이 잭 크로포드에게 사건 개요를 브리핑하고 있었다. 잭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윌의 작업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체스말의 등급이 상승한다는 패턴 외에는 짐작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입니다. 또 같은 나이트가 나올 수도 있죠. 아마 프로파일러분이 조사를 마친 뒤에 확인할 수 있겠지만..."


"화이트 비숍."


윌의 한 마디에 조사관이 그를 바라보았다.


기본적인 말은 모두 채워졌다. 좀 더 등급을 올려줄 필요가 있어. 판을 완성하고 나면, 그 땐 제대로 게임을 시작하는거야. 나에게로 와서 제대로 된 쓸모를 갖추게 된다면 기꺼이 그 판을 이끌어주지. 운용해주겠어. 이것이 내 디자인이니까.


"윌?" 잭이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땀까지 흐르고 있었지만 잠시 고개를 숙일 뿐 더 티를 내지는 않았다.


"다 봤습니다."


그 말에 잭은 조사관을 바라보았고 이내 감식팀이 투입되었다. 현장을 뒤로 하고 윌은 한숨을 쉬며 라텍스 장갑을 벗겨냈다. 잭은 그에게 다가와 커피를 내밀었다. "어떻습니까?"


윌은 커피를 받아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범인은 무작위로 희생자를 골라내는 것 같습니다. 장소 물색은 그저 폐기할 위치를 기준으로 고르는 것 뿐이에요. 하지만 반드시 보여질 수 밖에 없는거죠. 그저 '발견'해주기만을 바랄 뿐이고."


"지난 번 발견된 장소도 슬럼가였지." 잭이 말하는 사이 윌은 무의식적으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커피의 향취가 깊고 진한데도 어째서인지 지난 번 한니발이 가져온 콩소메 더블이 자꾸만 떠올랐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그 검은 액체는 이내 위장으로 전달된다. 중간에 스치는 폐부까지 느낄 정도로 기묘한 감각이 그의 등을 타고 올랐다. 그는 그걸 뿌리치려는 듯 들고 있던 커피를 그대로 근처 사물 위에 올려두었다.


"다만 면식범이 아니라는 게 문제에요. 범인은 대상이 '낯설어서' 선택합니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스말로 삼을 수 있는거에요."


"그렇다는 건..." 잭이 윌을 바라보았고 윌이 눈짓했다.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거군." 잭은 말하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단지 코팅 종이재질이 그의 입술에 닿는 것 뿐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하게 느껴져 윌은 잠시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갑자기 오한이 끼쳐왔다. 사건현장에서 흘린 땀이 희미하게 기화하고 있었다.


순간 그의 어깨에 가벼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피부를 덮은 섬유 위에 얹어지는 압박감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집요하면서 부드러웠다. 윌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 렉터 박사." 잭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니발의 손은 이내 윌의 어깨에서 그 자취를 감췄다.


"춥군요." 렉터는 말하며 윌이 내려두었던 커피를 서슴없이 잡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 얇은 윗입술과 강직한 턱이 만든 틈 사이에서 피어나오는 입김이 이내 커피의 김과 뒤섞여버렸다. 그제서야 커피의 향이 윌의 코 끝에 닿기 시작했다. 더 가까이에서도 맡을 수 없었던, 건조한 차내의 히터향과 더불어 그의 어깨에도 일부 묻어버린 냉정한 머스크 향이 그를 잠식하듯 매만지고 있었다.


한니발은 커피를 든 그대로 사건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잭으로부터 서류를 넘겨받아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눈길은 서류에 머물러있는데도 그는 점점 감식반이 정리하고 있는 사건 현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도착하기 전에 잭으로부터 간단히 내용은 전달 받았지만...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조사반이 시신을 조심스럽게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니발이 말했다.


"아마 시설에서 제대로 확인해봐야겠지만 윌은 이 시신에 들어있는 체스말을 '화이트 비숍'이라 단정하더군." 잭이 말하였다.


"그 말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한니발이 서류를 넘기며 말하였다. "발견된 장소는 일관되지만 패턴이 변경된 것이 눈에 띄는군요. 범인에게는 그게 일종의 업그레이드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잭에게 하는 말인데도 시선의 끝은 윌을 향해있었다.


"별다른 의견 차이가 없다면 여기서 정리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군." 잭이 조사관들에게 눈짓하며 말하였다. "주치의라 이미 잘 알 것 같지만 요즘 윌이 섭취에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더군요."


"일시적일 수도 있겠지만 장기화되면 거식증까지 이어질겁니다." 한니발이 말하였다.


"그보다는 사건 현장에서 추가할 수 있는 의견을 주셨으면 하는데요." 윌이 특유의 비틀린 미소로 응대했다.


"그럼 장소를 바꾸도록 할까요? 제가 하는 말에 더 어울리는 곳으로." 한니발은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공기중에 흩날리던 커피의 김까지 모조리 그의 입술 속으로 사라졌다. 미묘한 현기증이 윌의 머릿속으로 침투하며 침잠했다. 윌은 잠시 잭을 바라보았다. 잭은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이 현장을 정리하는 조사팀에 합류하고 있었다.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되십니까?"


한니발의 말에 윌이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막 상담이 끝나고 한니발의 사무실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닫히지 않은 문을 연 채 그대로 손잡이를 잡고 있는 한니발의 모습은 마치 액자 속에 들어가있는 그림같았다.


"이번 주말이요?"


"아무래도 당신의 섭식장애를 좀 더 체크해야 할 것 같아서요. 가능하면 잭과 블룸 박사를 초대해서 회포도 풀겸 해서 식사를 대접할까 합니다만, 어떻습니까?"


한니발의 식사자리 초대라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법 고리타분한 분위기 속에서 밀실살인사건의 피해자들처럼 한 자리에 모여 들어본 적도 없는 우아한 이름의 음식을 한입씩 맛보는 정도였지만 이번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음험한 분위기가 풍겼다. 구릿빛 문 손잡이를 쥔 한니발의 섬세하고 긴 손가락이 대답을 기다리며 조금씩 조여오고 있다. 시선을 떨어트리던 그는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그 다음에 나왔다.


"그러죠, 뭐."


"좋습니다. 그럼 오는 토요일 저녁 7시에 찾아와주십시오. 그 때 뵙도록 하죠."


"좋습니다." 한니발이 한 말을 반복하는 정도였지만 뭔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결정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윌은 한니발의 저택을 나섰다. 그의 뒤에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질 않았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셨군요." 윌은 앞치마 차림의 한니발을 맞이했다. 평소와 같은 정장 차림에, 앞치마는 방금 전에 구매한 것처럼 새하얬다. 윌은 자신이 사들고 온 와인을 들어보였다. "그렇게 좋은 건 아닌데...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하나 사왔습니다."


한니발은 그에게 길쭉한 봉투를 건네받아 와인을 꺼내보았다. "샤또 롤랑드비. 제법 괜찮은 보르도죠. 감이 좋으시군요. 마침 오늘 메인 메뉴와 잘 어울릴법한 와인을 가져오신 것 같습니다."


그 말과 함께 한니발이 주방으로 향했고 윌 또한 자켓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자신의 자켓을 정리해 걸 때 즈음 와인을 식탁에 둔 한니발이 은은한 미소를 띠며 그에게 말했다. "이른 시간에 와인까지 가져와 주셨는데 이런 부탁드리긴 죄송하지만...혹시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니발이 가져다 준 앞치마를 메고 윌은 그와 나란히 서서 재료 손질을 돕기 시작했다. 무중력처럼 건조하던 공간에 풍미가 끼쳐온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다. 진한 버터향과 함께 각종 채소가 어우러진 풍미의 끝에는 코를 아리게 만드는 후추 향이 곁들여져 있었다. 녹은 버터가 각 재료를 침범해 흐트려놓고 불 위에 달구는 동안 한니발은 어디선가 정성스럽게 기름종이에 감싸진 뭔가를 들고 오고 있었다.


"일단은 저 옆에 씻어둔 감자들을 손질해주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감자를 집는 윌의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포장을 벗겨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다진 고기로 보였는데 표면 결이 고르고 색감이 짙은 것으로 보아 상당히 등급이 좋아보였다. 좀처럼 보이지 않는 들뜬 감정을 머금은 채 한니발이 그를 바라며 말했다. "오늘 준비한 어린 양의 간입니다. 오늘의 만찬만을 위해 마련되었죠."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채소가 볶아지고 있는 자리로 가서 정성스레 마저 포장을 벗기고 옆에 있던 터너를 사용해 그 고기를 그대로 팬에 넣기 시작했다. 육류가 팬에 합류한 순간부터 채소가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 개는 억눌린 신음으로, 몇개는 호들갑을 떨며 내지르는 소리로 변하며 이내 더 진해진 풍미가 주변을 감돌았다. "오늘 요리의 주인공은 언뜻 보면 이 간 같아 보이시겠지만 당신이 깎아내는 그 감자야말로 곧 이 간 못지 않은 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될겁니다." 차분히 들뜬 그의 음성이 윌의 귓가에 채소를 볶는 소리를 반주 삼아 노래처럼 전해졌다. 묘한 운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윌의 손 아래에선 얇게 떠진 감자의 껍질이 편린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늦는 모양이네요." 허브 가든 월을 장식하고 있는 올레안더의 달콤한 향취에 밖을 바라보며 윌이 말하였다. 검게 그을린 월넛 식탁 위에 가지런하게 놓인 베이지 빛의 테이블 클로스와 쇼플레이트, 섬세하게 조정된 조명을 받아 빛나는 실버웨어가 주변의 정경을 화려함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앞치마도 모두 정리하고 제대로 된 만찬 복장에 큰 접시를 들고 나타난 한니발은 그에게 잠시 다가와 완성된 요리를 보여주었다.


"다진 간을 플람베 처리하여 감자 퓌레를 곁들인 파르망티에입니다."


고급 레스토랑 셰프와 같은 그의 말에는 아까 전보다 더 깊은 즐거움이 스며있었다. 윌은 그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든 그릇에서 끼쳐오는 진한 풍미를 맡아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맛있겠군요."


한니발도 그를 따라 미소짓더니 이내 그릇을 테이블 한 가운데 올려두었다. 식탁 전체를 장식하며 올려두는 마지막 장식품처럼 고르게 구워진 파르망티에가 보기 좋게 한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오늘은 우리 둘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냅킨을 펼치며 말하였다.


"그게 왜.." 윌은 당황해서 말하였다. 한니발은 여전히 자신이 할 일을 계속 해나가고 있었다. "분명 박사가 잭과 블룸 박사를 초대해 식사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두 분은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셨고요." 한니발의 손에 윌이 사온 샤또 롤랑드비가 들렸다. 그는 능숙하게 윌의 곁에 놓인 와인잔에 샤또 롤랑드비를 따른 뒤 자신의 잔에도 따라냈다. 병을 그대로 정해진 공간에 내려둔 뒤 아까 전 요리를 보여줄 때와 같이 입꼬리를 살풋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미소였다.


"제가 분명..."


"요즘 뭘 자주 잊어버리진 않으십니까?" 한니발의 말에 윌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가운데 자리한 파르망티에의 결을 흐트러뜨려 균열을 만들어내는 소리였다. 위에 만들어 둔 결이 부서지고 그 안에 자리한 고기와 야채의 뒤섞인 형세가 드러났다. 영혼처럼 그 틈에 가둬져 있던 김이 빠져나와 위로 흩어졌다. 한니발의 말 때문인지 얼마 전 리버가 건네주던 그의 재킷이 생각났다. 풍미깊은 고급 요리와 자신의 자켓이 미묘하게 섞이는 이상한 기분에 윌은 잠시 현기증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그를 다시 정신차리게 한 건 한니발의 다음 말이었다.


"...너무 자주 잊어버리신다면 말씀해주세요. 충분히 오해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일정 이상 기억이나 물건을 자주 잊어버리면 그것도 제가 알아야만 합니다. 어디까지나 주치의로서요."


한니발이 그렇게 말하며 파르망티에를 잘라낸 다음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제가 좀 더 당신의 상태를 체크하고 상세히 말했어야 했습니다. 오늘은 식사를 좀 더 챙겨보겠다는거지, 당신의 상태를 분석하겠다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아...아닙니다. 제가 착각했던 모양이네요." 윌은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관자놀이까지 내려온 땀을 훔쳐냈다. 이번에는 그를 바라보며 한니발이 괜찮다는 양으로 미소지었다. 양쪽 눈썹이 자로 잰 듯 슬쩍 내려온, 안쓰러운 미소. "그럼, 식사를 시작할까요?" 한니발의 말에 윌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라벤더 꿀도 조금 곁들였습니다." 그가 말하며 윌의 접시에 파르망티에 한 조각을 올려두었다. "꿀은 특히 흥미로운 재료에요. 생산 개체인 벌을 해치지 않고 채취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재료죠." 그가 말하며 자신의 접시에도 파르망티에 한 조각을 올려두었다. 윌이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의 재료와 크기의 요리는 한니발이 지난 번 가져온 '콩소메 더블'을 제외하면 지난 한 달 간 받아본 것 중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었다.


포크 끝에서 전해지는 바삭한 겉껍질의 균열, 그 아래로 이어지는 뭉근하고 뭔지 모를 - 분명 둔탁하고 때로는 사각사각 액체를 내뿜으며 잘려나가는 - 고기와 각종 재료의 배합물이 포크에 그대로 관통당하는 게 느껴졌다. 옆면으로 삐져나오는 육즙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식이장애인지 소화불량인지 몰라도 한참 음식을 입에 대는 게 어려웠던 윌의 앞에서도 그 음식은 충분히 맛있어보였다. 이내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들어 거친 표면을 내리치고 앞뒤로 교차하며 조직을 해치기 시작했다. 균열은 점점 더 벌어지며 이내 포크에는 그것의 '한 조각'이 떨어져나와 꽂혔다. 한 입. 건조한 공기만 머금거나 가끔가다 액체 정도를 받아들이던 그의 입 안에서 풍미가 터져나와 이곳 저곳을 물들이고 어지럽혔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벌어져 치아 사이로 포크가 가진 파르망티에 한 점이 들어가고 이내 혀 근육이 음식물을 위, 아래, 좌, 우로 미세하게 움직이며 음식물을 고정하고 일부 밀려들어온 음식물이 앞니에 의해 잘게 잘린 뒤 상악이 고정된 채 하악이 측면과 회전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교근과 측두근, 내익돌근이 하악의 위치를 교묘히 조절하며 윗니에 자리잡은 송곳니가 내용물을 내리찍고, 마침내 더 잘게 조각난 내용물은 인두와 가장 가까운 어금니쪽으로 혀에 의해 밀려가 완전히 으깨지며 그 향취를 주변에 더 흩뿌린다.


이내 연하작용으로 혀 뒤쪽이 올라가 으깨진 내용물을 인두로 밀어내며 후두개가 폐로 가는 기도를 덮고 그대로 식도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파르망티에의 내용물보다 더 잘게 흩어진 내용물은 이내 입 안에 풍미만 남긴 채 그대로 연동운동에 따라 1초에 2~4cm 속도로 식도 하부 괄약근을 통해서 내용물을 아래로 밀어보낸다. 그 다음부터는 풍미의 끝에서 이어지는 온전한 소화와 분해의 과정이다.


한 점을 섭취한 윌이 자연스럽게 두 번째 조각을 먹기 위해 나이프를 드는 걸 바라보던 한니발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제서야 자신의 접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가 했던 행동과 마찬가지로 포크 끝 감촉을 느끼고 나이프로 이미 죽어 가공된 것을 다시 죽여가며 그가 한 점을 입에 넣고 입 안에 굴려보았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같이 섭취하며 맛을 보는 것은 그를 충분히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견디려는 듯 그는 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괜찮네요." 윌은 이미 말하며 한 조각을 더 자신의 입술 사이로 밀어넣는 참이었다. 잘게 돋아난 수염 아래 자리한 그의 입술은 이제 파르망티에가 남긴 버터의 부드러운 윤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몇 점 먹지 않았는데도 이미 그의 얼굴에는 조금씩 화색이 돌고 있었다. 심인성 섭식 거부. 방금 전 삼킨 파르망티에보다 더 황홀한 병명이었다. 이토록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사그러지는 질병. 한니발의 잿빛 눈동자가 조금 더 짙어지며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샤또 롤랑드비를 들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어느덧 빈 잔에 좀 더 채워넣었다. 윌이 입술 사이에 밀어넣은 한 점을 다 삼켜갈 때 즈음 갑자기 한니발이 자신의 왼손으로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강력한 악력이 그를 압도했다.


"...렉터 박사?"


"그거 아십니까, 윌?"


한니발은 갑자기 윌 곁에 있는 나이프를 들어 윌의 입술 쪽에 대보는 듯 하더니 그 후에 바로 떼어내며 미소지었다. 마치 그 나이프가 금방이라도 자신의 입을 찢고 들어갈 것 같아 윌은 등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사람들이 음식을 맛보고 섭취할 때 대부분은 혀가 가장 민감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윌이 당황하는 사이 한니발이 나이프를 쥔 엄지손가락으로 윌의 아랫입술을 훑어내렸다. 평소 윌의 지성과 고집을 받쳐주는, 2인치짜리 살점덩어리.


"재료 본연의 향과 식감, 그 위에 곁들어진 기름과 소스를 아울러 풍미를 느끼게 하는 건 다름아닌 입천장이죠."


한니발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는 그를 다시 놓아주었다. 윌은 스스로 휘청이는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앞에서 침착하려 애를 썼다. 나이프를 들고 있는 건 한니발이지,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나이프로 입술을 쓰다듬던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그릇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혀는 뒷부분으로 음식을 넘겨 인두에 도달할 때만 해도 '맛'을 잃어버리지만 입천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 붙은 비강까지 향을 밀어붙이고 식도의 초반까지 그 풍미를 전달하죠." 그렇게 말한 한니발은 다시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전과는 다른, 충만함이 깃든 미소였다. 경직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던 윌은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냅킨을 만지작대며 다시 식사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 그런 그를 투명한 와인잔 아래 붉은 빛깔 사이로 가둬보며 한니발의 한쪽 입꼬리가 아무도 모르게 슬쩍 올라갔다.




"체스맨이요?" 윌이 잭에게 물어온 것은 바로 차에서 내린 다음이었다. 잭은 언제나와 같이 미간에 잔뜩 주름을 준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어째 전보다 더 혈색이 도는 것 같은데...제대로 된 식이장애 치료라도 받은 겁니까?"


"아..." 윌이 잠시 망설였다. 생각만 해도 그 식사 자리에서 느낀 극한의 기묘한 감정이 되살아날 것만 같았다. "아닙니다. 주말에 잘 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윌은 잭으로부터 서류를 받아든 채 그대로 함께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주기가 너무 짧은데요. 불과 지난 주에 발생한 사건 말고 또 하나라는 게..."


"패턴 자체는 체스맨 소행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번엔 체스말이 좀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패턴이 변한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게 대체..." 윌이 대답하다 그 자리에서 서류를 놓쳐버렸다. 잭이 그를 바라보았다. "...윌?"


피해자는 주차장 기둥에 그대로 주저앉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지난번 클럽 뒷골목에서만큼 완전히 접힌 모양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피해 정도가 한 눈에 보였다. 잠든 듯 평화로운 표정의 그 남성은 얼굴과 정 반대로 오른쪽 상복부가 파헤쳐져 있고 양 손은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아마 손이 없거나 제자리에서 터진 줄 알았을 것이다. 무수히 잘게 다져진 살점과 뼛조각들만이 그 자리에 손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파헤쳐진 상복부 틈에서는 삐져나온 장난감처럼 하얀 기물 하나가 시선을 끌고 있었다. 동그란 끝과 그 아래로 이어지며 넓어지는 원통 모양의, 화이트 비숍.


"윌...괜찮습니까?" 잭이 그를 부축했다. 윌은 이제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어 있었다. 시신 자체의 처참함만큼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 얼굴이었다. 반듯한 이마에 짙은 눈썹, 무엇보다 코 옆에 자리한 점이 모든 걸 분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얼마 전 그와 장난삼아 투닥대면서도 그에게 소화제를 처방해준 내과의, 리버였다.


잭이 붙잡아준 왼 팔을 놓으려다 넘어지려 할 때 갑자기 오른 쪽에서 그를 붙잡은 강한 힘이 느껴졌다. 한니발이었다.


"서류부터 챙기시죠." 한니발의 말에 잭은 일단 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다시 정리했다. "제가 진정시키겠습니다." 한니발의 품에 안긴 윌은 그대로 망연자실해서 겨우 몸을 가누면서도 충혈된 듯한 눈으로 피해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는, 아는 사람이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잭이 윌에게 물었다. 한니발의 시선이 윌에게로 내리꽂혔다.


"...제가, 아는...학교 후배입니다..제이슨, 리버..욱... " 윌이 중얼거리다 말고 몸을 뒤틀더니 한니발의 손을 뿌리치고는 근처 기둥쪽으로 달려갔다. 위장에 들썩이는 것들이 그의 명치까지 치고 올라와 메스꺼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며 연수에 위치한 구토 중추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입술이 창백해지고 침분비가 증가하며 심박수가 저하되기 시작했다. 받아들이던 입술은 이제 내보내기 위해 위아래로 갈라지고 그가 이내 기둥에 손을 짚기 시작했다. 횡격막과 복부 근육이 잔뜩 긴장하며 몸을 부풀렸다.


이내 윌의 입술 사이로 내용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구토였다. 몇몇 내용물은 짐작할 수도 없었지만 그의 과분비된 침과 함께 섞여나오는 것들 중에는 위 분비물과 함께 본래 기관에 존재해야 할 수많은 것들이 역진운동을 통해 역류하여 공기중으로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한니발은 그의 뒤에서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요, 윌. 차라리 다 뱉어내세요. 괜찮습니다."


그의 두 눈이 충혈되며 몇 되지도 않는 내용물을 뱉어내는 것을 바라보던 잭은 놀란 기색을 감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 주름이 더욱 좁아졌지만 그는 별도로 티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미 면식이 있는 피해자라면 아무리 윌이라도 - 아니 정신적으로 유약한 그라면 더 - 현장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이내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고민하고 나서 조사팀에게 현장을 정리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니발의 품 속에서 그 정경을, 충혈된 눈의 윌이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조금이라도 진정하세요." 어느덧 자신의 집 침대 위에 누워있는 윌을 바라보며 한니발이 말하였다. 그는 이제 자신의 코트와 자켓을 벗어 윌의 침실 옷걸이에 걸고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던 윌은 고개를 들어 한니발을 바라보았다. "혼자 있고 싶은데요." 별다른 변명을 덜어낸 진중한 한 마디였지만 한니발은 그 말에 들어가 있던 욕실에서 젖은 수건을 들고 천천히 그의 침대로 다가왔다.


"당신의 주치의로서 그 말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평소보다도 더 냉혹하지만 다정함을 담으려는 듯 그의 결연한 표정 속에서도 입술이 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는 이제 누운 윌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젖은 수건이 그대로 윌의 이마를 가볍고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그 감촉에 윌의 떨리는 눈은 감은 채로 조금씩 반응했다. 한니발의 잿빛 눈동자가 조금 더 짙어졌다.


이내 그의 기다란 손가락은 감은 채 떨리는 윌의 눈꺼풀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더니 그대로 광대뼈를 타고 내려가 그의 오똑하게 솟은 코와 그 옆으로 자리한 턱을 만지작대며 엄지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쓸어넘기고 있었다. 부드러운 행동에 비해 그의 음성은 지나칠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열이 더 오르는 것 같지는 않군요. 보통 구토와 함께 정신적인 충격이 더해지면 미열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그 사이 숨을 고르며 윌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구토 후 몇 번 물을 마셨다지만 그의 입술은 지나칠만큼 싱그러워보였다. 오히려 윌은 그 사이 한니발의 입술로 시선을 고정했다. 양옆으로 교차하듯 생긴 얇은 윗입술과 하악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냉정함과 무정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잠깐의 순간, 윌의 시선 위에 아주 미세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태리제 스푼 아래 자리한 풍미를 모두 빨아들이던 그 입술, 포크 끝에 자리잡은 파르망티에 한 조각을 애무하며 치아 뒤편으로 넘기는 입술, 그의 커피를 서슴없이 잡아든 뒤 그의 입술이 닿았던 결에 맞춰 접촉하던 그 입술...


알아챈 것은 윌보다도 한니발 쪽이었다. 그의 눈빛이 짐짓 날카로워지다 이내 흐려질 듯 깊은 빛으로 변하더니 그의 턱을 쓰다듬으며 엄지 손가락으로 윌의 아랫입술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가볍지만 귀여워하듯 조롱하는 그 손길에 윌은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을 수없이 떨었다. 그것을 멈추려는 듯 한니발의 곧은 입술이 그의 입술로 부딪혀왔다.


미끄러지듯 정중하지만 집요할만큼 오래도록 붙잡는 입맞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흐트러지는 호흡과 이제는 머릿속을 엉망으로 헤집는 진한 머스크향이 겹쳐지며 그를 몰고 가는 사이 이내 얼굴을 쓰다듬은 손에는 지난 주말 식사 자리에서와 같은 악력이 조금씩 스미고 있었다. 투명하고도 농염한 호흡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파열음을 내며 사라지는 와중에도 그의 침실 너머 의자에 놓인 한니발의 가방이 갑자기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하악을 벌려 자신의 타액을 밀어넣고 굵은 혀로 그의 입 안 곳곳을 장악하며 치아를 어루만지는 와중에도 가방 내부 포켓에 자리잡은 틈 사이로 삐져나온 보라색의 니트릴 뭉치가 계속해서 그를 붙잡았지만 이내 한니발이 자신의 입술 한 가득 그를 빨아들이자, 정신 모두가 그에게로 집중되며 흐려지던 정신은 더 탁해지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희뿌옇게 변해가는 정사에 온 정신을 조금씩 놓아가며 윌은 그대로 서서히 그 자리에 침잠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깊은 덫에 실낱 같은 의혹과 바늘 같은 추궁을 모두 태워넣은 채로...



-Il banchetto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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