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지 않았다

숨이 차서

by 서나연

오늘은 다니는 수영장이 문을 열었다. 빨간 날이라 강습은 없지만, 자유수영을 할 수 있는 날.


그리고 나는 가지 않았다. 마지막 강습이 지난주 금요일이었으니까 이제 오일 째 수영을 쉰 셈이다.
내일은 목요일이라 또 강습이 없는 날이다. (나는 월, 수, 금 반이다.) 내일도 가지 않는다면, 금요일에는 일주일 만에 수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숫자로 세어보니 괜히 더 마음이 조급해진다. 오일. 일주일.

수영 선생님 왈, 수영을 오일 쉬면 다시 감을 잡는 데도 딱 오일이 걸린다고 했다.


연휴엔 먹기도 많이 먹어서 몸이 물렁물렁해졌다. 과식의 여파인지 체한 듯 속이 얹혀서 운동이 절실은 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서 문제다. 내일 자유수영이라도 나가면 근육에 한번 더 긴장을 줄 수 있을 텐데.


라고 저녁때까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숨이 찼다. 내일 수영을 가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도 그렇고, 브런치북 연재에 대해서도 그렇다.


13화까지 오면서 나는 매번 뭔가를 정리하려 했던 것도 같다. 자연스레 내려진 결론도 있었지만, 한 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의미를 그려냈던 거다.


내가 낚시꾼이었다면, 물 앞에 앉아 낚싯대를 세워 두고 세월을 낚다가 물고기를 낚는 사람이었다면 정직했을 테다.


그러나 물 곁에 가지 못했달까. 글은 결국 삶을 담아내는 것이다. 살다 보면 입질이 온다. 그러나 입질이 오지 않는 날은 굶어야 한다. 굶어야.


연재 약속을 지키고자, 의미를 그려내는 것도 성실함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다. '그림으로 그린 물고기'를 잡아 놓고선, "월척이다!" 해 버린다면, 낭패다.


진짜 낚시의 기나긴 기다림 앞에서, 가짜 물고기를 그린 게 아닌가 싶어서 쑥스러워지는 날. 배부른 척을 해봤자 허기는 어쩔 수 없거늘.

낚시를 삶이라 부르고, 삶과 동떨어진 글을 가짜 물고기라 부른다면 말이다.


아아, 연휴 내내 아이와 붙어 지내서 그럴까. 하루 종일 작은 목소리에 응답하고, 밥 챙겨 먹이고, 고기만 먹으면 나물을 먹이고, 같이 뛰어다니며 놀고. 육천 보 걷고.

내일이면 아이가 드디어 유치원을 가는데, 굳이 그 힘든 자유수영을 가야 하나.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버티지 않아도,
조금 느슨해도 괜찮은 날.

이라고 하자.


금요일에 다시 수영장에 가야지.
라고 말하면 비장한 마무리가 될 까봐,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의, 그 쉬고 싶은 마음을 보채는 말이 될까 봐

노파심이 생긴다.


쉰 김에 금요일에도 한 번 더 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가지 않았다.
그 사실만 적어두는 것으로.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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