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버티세요"라고 다그치던 내가, "오늘은 쉬세요"라고 말하기까지
군살 하나 없는 몸매는 기본이었고, 체력이 화수분처럼 솟아났다. 하루에 요가 수업을 네 개씩 연달아 하고도 지칠 줄 몰랐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대구 시내 이곳저곳을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운동량이 엄청나서 하루에 다섯 끼를 먹어도 살이 안 쪘다. 버스비 왕복 삼천 원을 아껴 떡볶이를 사 먹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던 시절. 내 몸은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면 되는, 가장 믿음직하고 튼튼한 자산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고백하건대, 그때의 나는 '몸'은 알았을지 몰라도 '사람'은 몰랐다.
회원들 중에는 유독 "여기가 쑤신다, 저기가 아프다" 하소연하는 '아줌마'들이 많았다.
"선생님, 저는 플랭크만 하면 손목이 시큰거려서 못 하겠어요."
"무릎이 아파서 런지는 힘들어요."
나는 그 말들을 머리로만 들었다. 속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플랭크는 코어 힘으로 버티는 건데 왜 손목이 아프지? 그냥 엄지손가락 쪽을 꾹 누르면 되는데.'
손목이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교과서적인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손바닥 전체로 바닥을 밀어내세요. 어깨 기대지 마시고요.
나는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었고, 관절이 닳도록 집안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이미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금이 간 그녀들의 몸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들이 동작을 힘겨워하며 끙끙대면, 속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텐데' 하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잔인할 만큼 무구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 역시 '아줌마'라 불리는 세계로 진입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몸이 문자 그대로 부서지고 다시 붙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비로소 과거의 그녀들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 아무 것도 안 해도 그냥 손목이 아프다. 아니,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가 없다. 아이를 안았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내 손목은 너덜너덜해졌고, 잠 부족에 시달리는 허리는 삐걱거렸다. 20대의 내가 그토록 가볍게 해내던 '플랭크'는커녕,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 시절의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의 내가 요가 강사로서는 조금 더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몸에 대해 잘 아는 일은 마음에 대해서 잘 아는 일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손목이 아프다는 말이 그저 '관절의 통증'으로만 들렸다면, 이제는 그 통증 뒤에 숨겨진 '마음의 피로'가 읽힌다. 하루 종일 아이를 안아주느라, 가족의 밥상을 차리느라 닳아버린 그 손목의 사연을 알기 때문이다. 몸을 이해한다는 건 해부학적 지식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접속할 수 있는 공감의 면적이 넓어지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다시 요가 수업을 하는 나를 상상해 본다.
회원님, 손목 시큰거리시죠? 그거 제가 알아요. 저도 애 낳고 체외충격파도 맞아보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별짓 다 해봤는데요. 손목은 안 쓰는 게 답이더라고요.
그리고 슬그머니 다가가 덧붙일 것이다.
오늘 너무 아프시면 굳이 짚는 자세 하지 마세요. 그냥 앉아서 호흡만 하셔도 충분해요. 우리는 안 아프려고 운동하는 거지, 아프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이 처방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내려줄 수 있다. '아픔'은 겪어본 사람만이 위로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나의 망가짐이 누군가의 망가짐을 안아줄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되었다니. 몸이 강해져야 마음도 강해질 줄 알았는데, 몸이 약해지는데도 강해진 마음이 있다.
아니, 내 엄마를 닮아 더 연약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모르지만,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건 강한 마음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