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살을 뚫고 내 삶의 전구가 되어

망가지며 넓어진 나

by 서나연


나로서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몇 년이 다 흘러가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에야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혼자 몇 시간을 있을 정도로 컸지만, 출산하고 이 년 정도의 시간은 깜깜한 터널 같았다. 나는 내성적이면서도 '집순이' 스타일은 아니어서, 친구들과의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그리울 때가 있었다.


아직 화장도 하고, 구두도 입고 싶을 나이에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기저귀를 열 개쯤 갈면 하루가 다 갔구나 시간을 가늠하던 나날을 보내자니 억울했다. 서른에 아이를 봤으니 그렇게 빨리 결혼한 것도 아닌데, 나이를 떠나서 나 아닌 누군가에게 정신을 뺏긴 채로 이렇게 많은 날들이 흘러가 버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십 대 시절의 언젠가를 생각하면, 행복의 기준이 단순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것. 그것만이 '자유'였고 '행복'이었다. 내 몸이라는 그릇에는 오직 '나'라는 자아만 가득 채우면 그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해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가 두 살 되던 해였나, 크리스마스 이브가 떠오른다. 남편과 나는 큰맘을 먹고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긴 뒤 외출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완벽한 자유였다. 우리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나는 아껴두었던 코트를 꺼내 입었다.


우리, 오늘은 애 얘기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얘기만 하자.


비장하게 선언하며 칼질을 시작했다. 접시 위에는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놓여 있었고, 잔에는 붉은 와인이 찰랑거렸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식사. 아이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주느라 내 밥이 식을 일도 없는, 온전한 내 시간.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간만에 아기 없이 나온 식사 자리가 빈 접시처럼 허전했다. 입안에서 고기가 씹히는데,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고급스러운 맛일 텐데, 혀끝에서 겉돌기만 했다. 남편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자유로운데, 별로 자유롭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빈 것처럼 허전했다.

결국 우리는 약속을 어기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것 봐. 엄마가 보내준 사진인데, 해월이 지금 자나 봐.


그냥, 칼로 스테이크를 썰긴 써는데 별로 자유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별 맛도 없고 괜히 아이 사진만 뒤적거리다가 그냥 아이를 데리고 올 걸 후회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생각보다 빨리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아기 냄새가 훅 끼쳐왔다.

지긋지긋한 육아였는데, 단 몇 시간 떨어져 있다고 이렇게 보고싶은 건 뭐지. 그때는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월아, 아~ 해봐.


ⓒ Pixabay


헐렁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아기와 마주 앉아 블루베리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보랏빛 블루베리 한 알을 아이 입에 쏙 넣어준다. 오물오물, 작은 입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블루베리 한 알을 입에 넣는다. 아이가 나를 보며 눈을 찡긋 웃으면, 나도 따라 찡긋 웃는다.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해월이는 내 표정을 따라하고 나는 해월이의 표정을 따라한다. 그렇게 블루베리 몇 알을 먹는데 배가 꽉 차면서 기분 좋게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스테이크를 썰 때도 느껴지지 않던 포만감이, 고작 블루베리 몇 알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배가 부른 게 아니라, 마음의 빈 공간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아이의 눈빛 같은 것이 내 삶의 의미가 될 줄은 몰랐었다.


내가 초대한 적 없는 것들이 비집고 들어와, 아픈 살을 뚫고 내 삶의 전구가 되어, 일상을 빛내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어쩔 때는 그런 순간이 빛나는 트리보다 더 빛나 보인다.


이십 대의 내가 꿈꾸던 행복은 '완벽하게 보존된 나 자신'이었다면, 지금의 행복은 '망가지고 허물어지면서 넓어지는 나 자신'이다. 내 몸이 아이의 체온을 기억하는 한, 나는 예전처럼 날렵하고 매끈한 그릇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투박하고 넙데데하더라도, 누군가의 온기를 넉넉히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나는 인정하고 있다. 빛나는 것은 저마다 다르고 시절마다 다를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이런 어른이 될 줄 몰랐다. 내가 생각했던 행복이나 평안의 기준보다 더 넓은 곳에 와 있는 스스로를 느낀다.


자꾸 더 먼 곳으로 가는 삶은 어떨까.


지금은 모르는 의미를 내일에는 또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깨어지고 커지다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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