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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Mar 23. 2021

길고양이와 신생아, 함께 살 수 있을까?

출산 2주 전 구조한 길고양이 이야기

출산을 2주 앞둔 어느 날, 길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했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찍은 후 무거운 배를 잡고 뒤뚱거리며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담 아래 화단 쪽에 작게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는 고양이가 있었다. 남편과 나는 동물을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편이라, 길에서 고양이를 만날 때면 꼭 한마디는 하는 편이다. “어, 고양이다!” 라든가, “쟤 봐, 되게 귀엽다.” “너무 추워 보여. 불쌍해.” 같은 말을 하곤 한다. 그날도 그런 비슷한 말을 했다.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일어난 일 때문인지 아직도 그날 식당의 불빛, 가정집을 개조해놓은 듯한 특이한 구조, 양말 아래로 밟히는 장판의 질감, 옆 테이블에서 김치 전골이 보글보글 끓던 냄새, 딱딱했던 나무 의자 같은 것들이 생생히 생각난다. 우리는 소고기국밥을 먹었고, 남편은 맛있다고 했다. 나는 남편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먹을 만했고 언젠가 다시 올지도 모르겠다 정도의 생각을 했을 뿐, 그때까지만 해도 그 식당이 나에게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가 차 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남편은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아까 그 고양이, 아직도 있을까?”      


코너를 돌았는데, 아까 그 고양이가 아직도 정말 거기에 있었다. 남편은 아주 자연스럽게,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고양이는 검은색 조금, 갈색은 검은색보다 조금 더 많이, 그리고 등 아래로는 하얀색이 제일 많은, 이른바 삼색 고양이였다. 내가 대학생 때 잠깐 맡아서 키운 적 있던 언니 친구네 고양이 ‘쿠키’와 닮았기 때문에 더 눈길이 갔던 것 같다. 남편은 벌써 쪼그려 앉아 고양이를 만지고 있었다.     


나는 한발 물러서 있었는데, 남편은 전에는 본 적 없는 말을 하며 고양이를 계속해서 쓸어 넘기는 거였다. “길에 있느라 많이 힘들지.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어. 길에서 사느라 얼마나 아팠어.” 고양이도 남편의 말에 반응하는 것처럼 바지며 손에 머리를 끊임없이 비벼 댔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했고, 예쁘고 소중해 보여서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었다. 이분 남짓 동영상을 찍고 나서는 나도 고양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때 고양이는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해 보이는 침이 입에서 아스팔트까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침에는 피도 약간 섞여 있어서, 우리는 이 고양이가 많이 아픈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 우리였다면 그쯤하고 가던 길을 갔을 텐데, 그때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어떡하지?”      


그래, 어떡할 건가. 아픈 고양이를 두고 그냥 가기에는 마음에 걸린다는 생각이 샘솟았던 것 같다. 남편은 나의 말에 덩달아서 그러게, 우리가 얘를 어떡해야 하나. 그런데 데려가서 키울 수는 없잖아. 하고 선을 그었다. 나는, 키우면 되지. 정 안 되면 치료라도 해 주든가. 하고 대답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도 확실치 않았고, 건강 검진을 하고, 예방 접종을 맞추고, 지속적인 치료를 하고 보살핌을 주는 것은 시간과 정성과 경제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와 남편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머뭇거리다가, 무언가 결심한 것처럼 고양이를 번쩍 들고 차로 데려갔다. 차 문을 열고 물티슈를 꺼내서 고양이 입 주변을 열심히 닦았다. 그리고 고양이를 차에 태웠다.  


그때부터 고양이와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병원에 데려가 각종 검사와 치료를 하고, 집으로 데려가 보살피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후에 안 사실인데, 고양이는 죽기 직전이었다. 치료를 다섯 달째 지속하고 있는 지금도 고양이는 구내염이 낫지 않고 있고, 어떻게 그때 안 죽고 버텼나 신기할 정도라고, 태어나서부터 길에서만 줄곧 살아서 이빨도 제대로 난 게 없고 면역력도 완전 바닥이라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아이라고 병원에서도 계속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한 달에 두 번은 병원에 데려가 면역 주사를 맞히고, 하루에 두 번씩 항생제와 소염제를 먹이고, 고양이의 위장 상태를 고려해 치료용 사료와 영양제를 먹이고 있다.    

  

사실, 고양이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 아이를 낳은 직후에는 나도 너무 아팠고 보살핌이 필요했는데도, 병원에서 내 보호자로 있던 남편이 하루에 한 번은 집으로 가서 고양이에게 밥을 채워 주고, 물을 갈아 주고, 화장실을 치워 주고, 조금 쓰다듬어 주다가 와야 했고, 나는 제왕절개 수술 다음 날 걸어 다니지도 못하던 때에 하루에 두세 시간씩을 남편을 집에 보내야 했다. 산후조리원 생활을 끝내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에 고양이를 챙기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벅차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파서 골골대는 아이를 마냥 내버려 둘 수도 없어서 내 잠을 줄여 가며 고양이를 보살피다가 결국 스트레스성 위장염을 앓기도 했다. 생각보다 더 아픈 고양이었기에, 내 아이에게 더 좋은 유모차나 카시트를 사줄 수도 있는 돈이, 매달 고양이에게 들어갔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를 위해서, 그 고양이가 아프다는 사실 때문에, 저녁에 아이가 잠든 후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멍이라도 때리고, 핸드폰 게임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에,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고양이의 변 상태가 어떤지, 오늘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오늘치 약과 밥을 잘 먹었는지 확인하고, 만져 달라고 다가오면 옷에 털이 묻든 말든 무릎 위에 올리는 일이 스스로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와 만져 달라고 얼굴을 비비고, 눈 키스를 하면서 따뜻한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는 모습을 보면, 그 보드라운 털을 만질 때면, 나까지 괜찮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어디가 아팠었나, 싶은 이상한 마음도 따라온다. 아직 그것이 무엇이라고 콕 집어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저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하지 않으면 세상의 그 누군가도 하지 않아서, 정말로 멀리멀리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일. 멀리에는 낭떠러지가 있어서, 한번 낙하하고 나면 절대로 그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어질 것 같은 일. 나에게는 그때 고양이의 목숨이 그랬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의 부모로서 우리 아이를 보살피는 것 이외에도, 아픈 고양이를 보살피는 삶은 그 나름의 보람이 있다. 우리 부부가 선택하고 싶은 삶의 방식이란, 아이만 보살피는 삶보다는 차라리 그런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요즘, 아이를 뱃속에 품었을 때 세상의 모든 생명이 소중하게 느껴지던, 세상의 엄마가 된 것 같은 커다란 기분을 다시 느끼곤 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어떤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날처럼 동영상을 찍지 않아도 잊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가슴에 새겨내는 것 같다. 그날 우리가 소고기국밥을 먹으러 우연히 들렀던 곳은 명성 식당이고, 그래서 고양이의 이름은 명성이가 되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지은 이름이지만, 고양이의 이름을 부를수록 고양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이름도 없이 길에서 죽어가던 아이가 나와 남편에게 불리고 기억되는 것을 보면, 한 존재가 세상에서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고양이를 돌보는 것으로 인해, 그 시절의 마음을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대지 같고, 내 위에 무언가가 꽃필 수 있구나, 하는 경탄으로 가득 차 있었던 마음을 말이다.


아기와 고양이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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