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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Mar 30. 2021

130일 된 내 아이가 첫 이별을 했다

시터 이모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날

130일 된 내 아이가 첫 이별을 했다. 베이비시터 이모의 엄마가 골다공증이 악화되었고, 또 치매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이모는 시골집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이모는 충청도 단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서는 아침의 뜨는 해와 햇볕에 빛나는 코스모스, 벚꽃, 개나리의 색깔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 선명한 대지 위로 다람쥐 몇 마리가 걸어갈 때면, 다람쥐의 걸음걸이에 맞춰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람쥐가 해바라기 위로 올라가서 해바라기 씨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먹고 나서 얼마나 신난 몸짓으로 다시 온 길을 돌아갔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때면 이모의 눈빛이 얼굴의 주름을 가릴 만큼 빛났다.           


고향에 다시 가고 싶냐고 물으면 이모는 마음속에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자동차 멀미가 심해서 여행도 필요 없다고 말하던 이모의 눈은 설거지를 하다가 붉어지곤 했다. 이모가 슬프니까 나도 슬프다고 말할 때면, 이모는 꼭 '괜찮다,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해월이를 안고 웃었다.      


이모는 우리 집을 떠나면서 매화나무, 곰돌이 인형, 키우던 파를 남기고 갔다. 해월이와 헤어지기 일주일 전쯤 이모는 매화나무 가지 두 개를 꺾어 왔다. 해월이에게 꽃을 보여주려고 들고 왔어, 하면서 해월이의 얼굴에 대고 흔들었다. 이모는 해월이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곰돌이 인형을 주고 갔다. 인터넷에서 파 키우는 방법을 봤다면서 반찬통에 물을 받고 파를 키웠다.           


이모는 떠나던 날 해월이에게 말했다. “이런 일로 울면 안 돼. 이모는 해월이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대신 대답했다. "이모, 해월이가 정말 이모를 기억 못 할까요?" "그럼요. 돌만 돼도 다 까먹어요." "아니에요. 해월이는 이모를 기억할 거예요. 이모가 해월이에게 불러준 노래를 내가 기억하잖아요. 내가 그 노래를 해월이에게 불러 줄 테니까 해월이는 이모를 기억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이모가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사랑하는 우리 해월이- 건강한 우리 해월이- 행복한 해월이, 소중한 해월이, 고마운 우리 해월이-"


내가 이모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기억하겠다는 말이었다. 해월이는 이모의 말대로 무수한 사람과 무수한 계절과 무수히 빛나는 꽃과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만지고 가지게 될 테다. 그런 해월이가 첫 번째 이별을 했다. 이모의 부재쯤이야 며칠이면 적응될 거라고 말했지만, 어쨌든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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